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정치적 중립,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용택 논설위원

美 대통령, 노골적 대선후보 지지

韓 대통령은 "누가 좋다" 말 못해

국회의장·공무원도 '중립의 의무'

정치중립 정치사에 큰 기여 못해





“그녀보다 대통령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는 노골적이다. 지난 6월 클린턴 지지를 공식 선언한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최상의 단어를 선택해 클린턴을 칭찬한다. 어디 그뿐인가. 부인인 미셸 오바마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민주당원이든 공화당원이든, 좌든 우든 상관없이 선거는 앞으로 4년 또는 8년 동안 누가 어린이의 미래를 만들 힘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민주당 전당대회) 선 것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클린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와 함께 가겠다.”

반대진영에 대한 공격은 매몰차다. 공개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지난달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느닷없이 “도널드 트럼프는 한심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인물”이라며 공화당 지도부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문제 제기를 하는 미국 국민도 없다. 으레 그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만 그러는 게 아니다. 한국처럼 여소야대인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적수는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다. 그는 당적을 그대로 갖고 예산안 처리의 키를 쥔 하원에서 공화당 입장을 대변한다. 민주당의 어느 누구도 그런 하원의장에게 중립을 요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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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을 대한민국으로 옮겨오면 대통령은 무조건 탄핵 대상이고 국회의장은 사퇴압박에 직면한다. 바로 며칠 전인 20대 정기국회 첫날 이런 문제로 국회의장실이 점거당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정세균 의장이 개회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 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국회의장의 국민 사과와 부의장의 추경안 처리로 사태는 무마됐지만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대통령의 중립의무는 이미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겪은 터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그런 중립의무가 대한민국 정치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따져보면 내세울 게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 그리고 모든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우리의 정치나 선거가 미국보다 훨씬 공정해야 하는데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중립 시비만 난무한다.

왜 그럴까. 법과 규정은 있으되 귀에 걸면 귀걸이법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법이기 때문이다. 해석도 가지각색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국회의장 중립의무에 대한 해석도 여야가 다르다. 국회법에는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20조2항)’고만 돼 있다. 이를 두고 여당은 중립의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고 야당은 규정 자체가 없다고 반박한다. 당초 이 규정의 취지도 행정부에 휘둘리는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의무가 아니었다. 제재 방법도 별 게 없다. 이번에 여당이 의장사퇴촉구 결의안을 발표하면서 중립의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도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명확한 잣대보다는 정치적 측면이 강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탄핵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며 기각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새청년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이 없었다면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안에 앞장설 리 없었다. 더구나 당선 당시 소속정당이 있던 대통령이 중립을 지킬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제 대선정국이다. 정치적 중립 논란이 더 거세질 게 자명하다. 관련법을 한층 엄격히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아예 미국처럼 확 풀어버리는 방법은 어떨까 싶다. 지금까지 정치적 중립의무가 어떤 효과를 냈는지 피부에 와 닿는 게 없어 하는 말이다. /ytlee@sed.co.kr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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