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4개 법안(근로기준법ㆍ고용보험법ㆍ산재보험법ㆍ파견법)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뒤 20대 시작과 함께 다시 발의됐지만 여소야대의 정치 환경으로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기업들에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다면 통상임금 때와 같이 비용급증에 따른 산업현장의 대혼란과 줄소송이 우려된다. 따라서 국회에서 합의 가능한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과 통상임금은 협상용이 아니라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므로 국회에서 경직적인 태도를 버리고 원 포인트 개정이라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대법원에 따르면 휴일ㆍ연장근로 포함 관련 소송은 올해만 4건이 늘어나면서 총 12건이 대법원에 올라와 있다. 핵심은 휴일에 일하면 휴일근로수당 50%와 연장근로수당 50%를 중복해 받느냐 여부다. 현재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라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와 별개로 본다. 따라서 휴일에 일하면 휴일수당 50%만 받게 된다.
지난 2011년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은 휴일근로를 했을 때 휴일근로수당 50%만 받고 연장근로수당 50%를 받지 못해 부당하다고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심이 끝난 뒤 4년 만인 지난해 9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지금까지 무려 5년 가까이 판결을 미뤄두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관련 소송도 증가하고 하급심 판결도 엇갈리고 있다. 2심까지 결과를 보면 12건 중 8건이 중복 할증을 인정하는 것으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가장 최근인 올해 2월 부산고법은 사천시 환경미화원 40명과 볼보코리아 생산직 77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아 중복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급심이 팽팽해지면서 대법원도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은 결국 고용창출 능력이 취약한 영세 중소기업에 심각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중복 할증이 인정된다면 당장 연장근로수당을 포함해 100%를 받는다. 이는 곧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해석이어서 근로시간이 주68시간(주40시간+연장근로12시간+휴일근로16시간)에서 주52시간(주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번에 줄어들게 된다. 지금까지 정부의 행정해석이 뒤집히는 것이다.
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휴일근로 중복 할증 시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는 3년치 소급분과 당해 연도 부담분을 합해 7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중 5조원이 중소기업의 부담”이라고 밝혔다.
국회에 발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해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고 주68시간인 근로시간을 주52시간(특별연장근로 8시간 추가 가능)으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도 암묵적으로 국회 법안 처리를 기다리는 만큼 현장 혼란 최소화를 위해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법안 처리와 관련해 진영논리에 갇힌 채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에서도 노동개혁과 관련한 4대 법안의 ‘패키지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 양측에 모두 이익이 돌아가는 법안인 만큼 야당의 주장대로 파견법만 제외하고 나머지 3개 법안만 우선 통과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여당의 당론이 ‘노동개혁 패키지 처리’와 관련해 19대 국회 당시와 달라진 게 없다”고 전했다.
당정은 기간제 근로자의 기간연장(2년+2년)을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다는 비정규직법은 패키지 처리 명분에 사로잡혀 중장기 과제로 빼버렸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여전히 파견법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할 악법”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견법은 용접ㆍ주조 등 뿌리산업과 55세 이상 고령자 파견허용을 확대하는 것으로 야당과 노동계의 반대가 크다.
그나마 실업급여 지급액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확대하고 지급기간을 30일씩 연장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과 출퇴근 재해를 도입하는 산재보험법은 여야 이견이 덜한 편이다. 고용보험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하루에 지급하는 실업급여는 상한액과 하한액 구분 없이 4만3,416원이 지급되는 실정이다. 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인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법을 제외하고는 국회 합의가 가능하다고 본다”며 “정부와 여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황정원기자·나윤석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