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방송·연예

송해, 동북아 3국 한인 유랑의 역사 탐방…‘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송해, 동북아 3국 한인 유랑의 역사 탐방…‘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송해, 동북아 3국 한인 유랑의 역사 탐방…‘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14일 방송된 KBS1 추석 특집 다큐 ‘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에서는 송해가 동북아 3국 한인들의 유랑의 역사를 찾아가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추석 특집다큐 ‘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에서 국민 MC 송해가 한인 강제 징용의 현장인 일본 군함도부터 사할린 민족의 염원이 담긴 곳 백두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은 채 살아온 동북아 3국 한인들의 유랑의 역사를 찾아간다.

송해는 일제 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돼 일본으로 떠났던 뱃길을 따라 떠났다. 그 위에서 송해 선생은 눈물로 고향을, 가족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송해는 일본에서 꼭 들리고 싶은 장소가 있었다. 바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0년대에만 약 800여명의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곳, 지옥섬이라 불리는 군함도였다.

고된 착취와 노동의 역사는 숨긴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된 섬. 군함도로 향하는 배에서 송해 선생은 내내 무거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지하 1000m가 넘는 해저탄광에서 하루 12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고향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송해는 ‘나그네 설움’을 노래했다.

일본에서 마주한 아픈 역사는 또 있었다.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떠날 수 없었던 지옥의 섬,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기회이기도 했던 사건이었다.

1945년 8월 9일, 굉음과 함께 나가사키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그림자. 바로 원자폭탄이었다. 우리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 총 69만 명 가운데 조선인은 약 7만 명으로 추정된다. 조선인들은 폭탄의 피해를 직접 받은 것은 물론 원폭 투하 이후 도시 복구 작업에까지 투입돼 방사능에 노출됐었다.

나가사키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권순금(91세) 할머니 역시 원폭 피해자로 수십여 년을 살아왔다. 송해 선생과 한국 제작진들의 방문에 환하게 웃어보였던 할머니는 한국인들을 보면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고 말했다.

당시 집에 있었던 본인은 물론, 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오던 어머니와 동생들까지 끔찍한 원폭 피해를 입었다는 권순금 할머니. 하지만 타국에서 온갖 차별과 가난, 원폭 피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안고 살면서도 고국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잊었던 역사, 사할린

오호츠크 해에 위치한 러시아의 유일한 섬, 사할린. 불과 150년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중죄인들이 갇혀있는, 사람의 온기는 찾기 힘든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름도 낯선 이 땅에는 우리가 잊었던 역사가 서려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다시 홋카이도를 거쳐 사할린까지 따뜻했던 가족의 품을 떠나 얼어붙은 땅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탄광에서, 조선소에서 밤낮없이 일해야만 했다.


사할린에서 송해의 마음을 무겁게 한 곳은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이었다. 마침내 맞이한 조국의 광복, 사할린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에 부역하던 한인들은 드디어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모두 코르사코프항으로 모여들었다.

관련기사



하지만 배를 탈 수 있는 건 오로지 일본인 뿐.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정신없었던 조국 또한 한인들의 돌보지 못했고, 여름, 가을이 가고 혹독한 추위가 찾아올 때까지 항구를 떠나지 못했던 이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통곡과 울분이 잠든 땅,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 송해는 한 맺힌 삶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렀다.

낯선 땅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의지와 집념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사할린 한인들을 위해 송해 선생은 사할린 일정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사할린 한인들에겐 고향이자 부모의 품 같은 의미라는 사할린 방송국을 찾은 것이다.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던 한인들. 중국에도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후손들이 있다. 중국 길림성의 작은 마을, ‘정암촌’. 한국 시골마을을 옮겨놓은 듯 정겨운 모습이 느껴지는 마을에서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여전히 ‘대한민국’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송해는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 꾹꾹 삼켜왔던 애통함을 터트리고 말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향땅 앞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로 시간을 보냈을지,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 어머니를 그리는 아들로 두만강에 선 송해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어느 때보다 구슬프게 노래했다.

길고 길었던 여정, 그 마지막 목적지는 한반도의 가장 높은 땅, 우리가 하나임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는 땅, 백두산이었다. 모든 이들의 소망을 안고, 그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한 송해는 통일을 꿈꾸며, 한민족의 힘을 북돋우며 부른 노래 ‘아리랑’을 불렀다.

◆오사카, 사할린, 심양… 전국노래자랑 예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고전무용은 물론 최신 K-POP 댄스까지 섭렵한 깜찍한 조선족 어린이부터 ‘목포의 눈물’만 들어도 고향생각에 눈물짓는 오사카의 할머니까지…. 송해는 모든 여정 중 열렸던 ‘전국노래자랑’ 예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이, 직업, 성별은 달라도 ‘타향살이’의 공통점을 가진 이들을 위로 해준 건, 역시 노래였다.

수많은 동포들이 기다렸던 ‘전국노래자랑’ 예심 현장과 ‘노래’로 하나 됐던 가슴 벅찬 순간들, 송해와 함께한 군함도에서 사할린, 백두산까지 그 뜨거웠던 여정은 KBS 1TV ‘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 제공]

전종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