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건축구조전문가 필참시켜 지진 대비해야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

건축물 안전 땜질식 처방으론

재난·붕괴사고 대비할 수 없어

내진설계·현장감리 등 전문분야

건축구조기술사 참여 의무화를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




지난 9월12일 밤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한반도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두 달여 앞선 7월 울산 부근 해상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시민들은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만 감지했을 뿐 직접적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많은 국민이 지진의 실체를 느꼈고 강진으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이번 지진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 지진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현실적 재앙이 된 것이다.

지진학자들은 앞으로도 규모 6.0~6.5 정도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의 직접적인 생활공간인 집·사무실·학교·병원 등의 건물이 안전한가’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건축법에 내진설계를 도입해 그 이후 설계된 건축물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통계를 잡고 있다. 과연 국민들은 이 통계 결과만 믿고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1980년대 건축구조설계사무소를 개업해 현재까지 건축구조업무와 건축물의 내진설계를 담당해온 필자의 대답은 ‘아니요’다. 건축법상 내진설계에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건축물 안전사고 때마다 많은 건축구조공학자는 우리의 건축법상 구조안전 문제에 대해 똑같은 얘기를 해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법 제도는 고쳐지지 않은 채 땜질식 처방이 이어져왔다.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를 통해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노력이 있었지만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 분당 환풍구 붕괴 사고 등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관련기사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건축물 안전에 관한 최고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의 실제적 참여가 배제돼왔다는 점이다.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물의 뼈대·구조 분야에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고 설계·시공·감리·평가 등을 수행하는 국가기술자격증을 얻는 기술자다. 내진설계·시공·감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현 제도에서는 건축물 구조안전 확보에 중요한 구조도면 작성과 구조감리 업무를 건축사가 수행하고 건축구조기술사는 필요한 경우에만 협력하는 보조적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구조도면의 수준과 공사시 현장 구조안전의 확인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향후 닥칠 지진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장 감리, 특히 내진상세에 대해서는 반드시 건축구조기술사가 설계된 대로 현장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직접 확인해야 한다.

또 많은 선진국에서는 건축 인·허가권자가 특정 전문자격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내 담당 관할관청 공무원들은 구조안전 관련 전문성이 부족해 부실 도면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건축물 안전은 건축주 외에도 공공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건축주뿐 아니라 국가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허가관청에서도 내진상세 도면을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구조안전 전문가를 갖춰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듯이 건축물의 안전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경제논리나 숫자논리에 의해 결코 등한시될 수 없는 문제임을 이제라도 직시해야 한다. 앞으로 닥칠 자연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축구조기술사가 협력자가 아닌 주체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개선돼 전문가들의 실질적 참여가 이뤄진다면 지진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고 모두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