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금리 낮추면 돈 풀린다는 착각 버릴 때 됐다

사상 최저 금리에도 돈이 은행 금고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0.3회로 11년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2회나 줄어든 것으로 은행에 맡긴 돈을 찾아간 횟수가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다. 반면 현금과 예적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등으로 구성된 광의통화(M2)량은 2,352조원으로 1년 전보다 6.9% 증가했고 예금은행 총예금잔액은 무려 89조원이나 급증한 1,194조원에 달했다. 금고에 들어간 돈을 꺼내 소비하고 투자하라며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풀었건만 헛수고였던 셈이다.


1.25%까지 금리가 낮아졌는데도 돈이 돌지 않는 것은 정부가 경기부양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금리·통화정책 카드의 약발이 다했기 때문이다. 언제 경기가 살아날지 알 수 없으니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가계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갑을 닫으면서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다. 금리 내리고 돈 더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70% 붕괴 위기에 처한 소비성향, 갈수록 줄어드는 설비투자 등 증거는 곳곳에 널려 있다. 오죽했으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조차 금리 인하의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고 고백했을까. 상황이 이런데도 일각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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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넘게 계속된 저금리정책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은 낙수 효과를 노리는 기존 부양책으로는 경기를 살릴 수 없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실패한 정책을 부여잡기보다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가계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이를 통해 소비를 활성화해 기업 투자와 생산을 촉진하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가계의 소득 불균형을 개선하고 수십년째 변하지 않는 산업구조를 뜯어고쳐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메마른 폭포 밑에서 물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보다 분수로라도 뿜어 올리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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