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 개입 두세달 후 총액만 공개...환투기세력 악용 차단

美, 무역흑자 한국 압박·원화강세 유도에 전격 시행

TPP 협상테이블서 발표...가입 전제조건 활용할듯



외환당국이 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추진하면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환투기 세력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느 규모로 개입했는지 촘촘히 내역을 공개하면 환투기 세력이 당국의 개입 패턴을 감지해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개입 내용은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분기별 개입 총액만 공개하는 등 외환당국의 ‘패’를 보여주지 않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2·4분기 개입 내역을 8월이나 9월에 총액만 발표하는 개략적인 방식이다. 지금도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매달 한국은행에서 발표되는 외환보유액을 통해 당국의 개입 규모를 가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세 달이 지나 지난 분기 총 개입 물량만 공개하는 것은 시장에 큰 혼란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시장 공개를 확정 발표할 시점은 우리나라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가 될 가능성이 크다. TPP는 공동합의문을 통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가입을 위한 전제조건 격으로 내걸고 있다. 한국이 아직 TPP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는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하고 세부방식까지 밝힌다면 TPP 협상 카드를 먼저 소진해버리게 된다. 엉뚱한 시점에 제도 도입 여부를 밝히기보다는 TPP 협상 테이블에 앉아 발표하는 게 협상에 도움이 된다.

최근 미국은 ‘한국판 플라자합의’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우리 외환당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4월 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일본·독일·대만 등과 함께 우리를 ‘환율조작국’ 전 단계인 ‘환율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연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를 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가 3%를 초과하며 △과거 1년간 외환시장에서 달러 등 외화를 GDP 대비 2% 이상 순매수하는 국가 등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우리는 무역흑자와 경상흑자 두 가지가 기준을 월등히 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최악의 경우 미 조달시장 참여가 제한되는 등 제재를 받는다. 1985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5개국(G5)이 엔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기로 합의한 후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과 같이 과도한 대미 무역·경상흑자를 누리는 한국의 외환시장을 압박해 원화 강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지난 6월에는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이 극히 이례적으로 한국은행을 방문해 외환시장 개입을 에둘러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원·달러 환율은 올 6월 달러당 1,190원선까지 올랐지만 이달 7일에는 1,090원까지 떨어지는 등(원화 강세)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투명하게 외환시장 개입 현황을 공표하면 미국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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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우리 외환시장의 선진화와 정부가 추진하는 원화 국제화에도 도움이 된다. 브라질·러시아·인도 등 신흥국은 물론 우리와 체격이 비슷한 호주·뉴질랜드도 공개하는 마당에 우리만 비밀에 부치는 것은 외환시장 선진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원화 직거래시장을 개설(중국 상하이 원·위안)했다. 이 시장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으로 홍콩·뉴욕·런던 등에 원·달러 직거래시장을 개설하는 원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미국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시 개입이 별로 없다고 누명을 벗는다고 해도 막대한 경상흑자와 대미 무역흑자가 계속되는 한 미국은 통상 부문 등을 동원해 우리를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수입량을 늘려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 미국을 달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상흑자에 대해 국내 경기가 안 좋아 수입이 줄어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라고 미국에 해명해도 미국은 한국의 낮은 실업률(3%대) 수치를 근거로 믿지 않고 있다”며 “기술적으로 실업률 산출 방식 등을 현재 좋지 않은 고용 상황 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현실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의 대미 무역수지는 막대한 흑자이지만 서비스수지는 지난해 143억달러 적자다. 이런 사실을 미국에 적극 피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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