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평생 품질·원칙경영 실천…식품업계 큰별 지다

국내 간장산업 선도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별세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

1960~70년대 정부 요직 역임

세계 최고품질 간장 일념으로

경영 뛰어들어 아낌없는 투자

불법제조 논란 정면돌파 승부도

대표 식품기업 반열 올려놔





국내 간장 산업을 이끌어온 박승복(사진) 샘표식품 회장이 지난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올 들어 한국 식품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었던 1세대 주역들의 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식품 업계에서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고인은 국내 간장 생산량 1위, 세계 간장 생산량 3위인 샘표를 본격적인 간장 명가로 키워낸 인물이다. 식품 본연의 가치인 품질을 최우선에 두는 원칙 경영으로 샘표를 대한민국 대표 장류 그룹으로 올려놨다.

박 회장은 경영자 이전에 뛰어난 행정가였다. 함흥공립상업고를 졸업한 후 KDB산업은행 전신인 한국식산은행에서 25년간 근무했다. 1965년부터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주민등록번호 제도 도입, 소양강댐 준공, 세종문화회관 설립, 한국민속촌 민자유치 건립승인 등 1960~1970년대 정부 주요 업무를 추진했다.


1922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샘표식품 창업주인 선친 박규회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1976년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선친의 뒤를 이어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했다. 세계 최고 품질의 간장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1987년 당시 단일 품목 설비 시설로는 세계 최대인 간장 공장을 건립했다. 이를 필두로 소비자들이 간장 제품 하면 샘표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샘표를 국내 대표 식품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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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식초를 음용해온 고인의 식초 사랑은 제품 개발로도 이어졌다. 고인은 하루 세 번 식후에 식초를 마시는 특별한 습관 때문에 ‘식초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초를 누구나 일상에서 손쉽고 맛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흑초음료 ‘백년동안’을 개발하기도 했다.

원리 원칙을 중시한 고인은 경영 현장에서는 승부사로 불렸다. 1985년 한 방송국에서 불법으로 간장을 만들어 파는 현장을 방영한 뒤 소비자들이 샘표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위기 상황이 닥치자 박 회장은 직접 TV 광고에 출연해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고 밝히며 정면 돌파, 당시 업계의 대표적인 리스크 관리 사례로 주목받았다.

40여년을 경영 일선에 있었던 박 회장은 한국상장회사 협의회 회장,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 중견기업 및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박 회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목련장,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한국의 경영자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박 회장은 생전에 온화한 성품과 소탈한 행보로도 주목받았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매일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하고 매 분기마다 전 직원 앞에서 회사 경영 현황을 설명하며 신뢰를 쌓았다. 직원들에게 노조 설립을 먼저 권유한 것도 그였다. 직원 경조사를 직접 챙기고 아픈 직원을 문안하는 등 직원에 대한 사랑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력 뒷면과 이면지를 메모지로 활용하고 자신이 타던 10년 된 자동차를 장남에게 물려줘 40만㎞를 타고서야 바꿨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등 검소한 생활습관으로도 유명하다.

유족은 아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등 2남 3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7시.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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