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추위는 악명높다. 모든 생명체가 얼어죽고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마저 활동을 멈추는 절대영도(섭씨 영하 273℃)에서도 “무척 춥군!” 한마디만 내뱉고 말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가혹한 환경에 놓인 핀란드 시민들은 한정된 에너지로 최대한의 전기와 열을 만들 수 있는 발전 방법을 고민해왔다. 이들이 1920년대부터 열병합발전소(CHP)를 도입한 이유다.
이달 초 찾은 핀란드 수도 헬싱키. 빽빽한 삼림을 끼고 있는 이 도시의 주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눈에 띄는 발전소는 대부분 CHP다. 핀란드의 주요 에너지 사업자인 헬싱긴에너지아를 예로 들면 헬싱키 인근 하나사아리(Hanasaari)·살미사아리(Salmisaari)·부오사아리(Vuosaari) 등 세 군데에 CHP를 갖추고 전기와 열을 공급하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1920년 CHP를 도입한 이래 지난해 기준 전체 전기 생샨량의 36%(26GWh), 열 생산량의 82%(71GWh)를 CHP가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1GW 규모의 CHP 설비를 더 짓는다는 계획이다. 야리 코스타마 핀란드에너지협회 열병합발전·냉난방 담당은 “핀란드는 오랫동안 CHP를 활용한 발전(發電)에 주력해왔다”며 “핀란드의 CHP들은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삼는 부오사아리 CHP는 에너지 효율이 일반 석탄 화력발전소의 2배(42~48%)에 가까운 93%나 될 정도다.
핀란드가 CHP에 열 올리는 이유는 고효율 발전소의 확보가 에너지 주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CHP는 전기만 만드는 일반 발전소보다 훨씬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 긴 겨울이 지속되는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는 LNG·석탄 등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처지다.
핀란드는 최근 석탄 CHP를 줄이면서 친환경 연료인 LNG, 바이오매스(버리는 목재) 등을 활용한 CHP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CHP 설비에 대해선 국가가 발전원가와 전력 판매가의 차액을 보조하는 지원 정책을 통해 기업들을 독려하고 있다.
다만 핀란드는 CHP에 대해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 같은 직접적 지원책을 시행하진 않는다. CHP 사업자들이 자생력을 강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코스타마 담당은 “에너지 분야에 대한 핀란드 정부의 원칙은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발전소를 억지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국가 재정의 부담을 덜면서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헬싱키=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