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시·도의원에게 보좌인력을 허하라

김홍길 사회부 차장

전국 시·도의원들이 정책지원전문인력(유급보좌관) 1명을 둘 수 있도록 규정한 지방자치법 개정이 이번에도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가 합의해 본회의에 상정해야 하지만 반대 여론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벌써 4년째다.

유급보좌관 도입이 필요하다는 쪽은 시·도의원이 홀로 민원인 응대부터 지역 현안 챙기기, 그리고 매년 예산 시즌만 되면 38조원(서울시 기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한 달 만에 심의하다 보니 모든 것이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실 있는 시정이나 도정을 펴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을 두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인 셈이다.

한 서울시의원은 "동장과 통장·반장 역할을 혼자 하라는 말이냐"라며 토로했고 또 다른 시의원은 "업무를 혼자 보다 보니 오후11시 넘어 귀가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했다. 자녀를 둔 한 여성 시의원은 "한집에 지내면서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렇게 힘들면 시의원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지방자치를 위해 뛰어든 순수한 의도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시·도의원들의 정책보좌관 도입을 막고 있는 것은 정치권이다. 지역 여론의 향방을 쥐고 있는 시·도의원들이다 보니 정치권은 대놓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 어중간한 태도로 해를 넘기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시·도의원들은 불만을 털어놓는다.

현행 법규상 국회의원은 9명까지 보좌인력을 둘 수 있지만 시·도의원은 0명이다. 국회의원과 시·도의원의 역할이 입법과 조례제정으로 나뉘지만 둘 다 행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좌인력 '9대0'은 좀 지나치다는 동정론마저 나온다.

유급보좌관 도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쪽은 시·도의원들이 개인비서로 쓸 보좌관을 왜 굳이 혈세를 들여 지원하느냐고 주장한다.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사석에서 만난 서울시의원들은 "여야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면 전부 필요성에 동의를 하면서도 실제 본회의 상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앞과 뒤에서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자신의 지역구에서 미래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시·도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놓으려는 사심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양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시의원은 "근본적 원인은 여의도 국회의원이 시·도의원을 여전히 주종 관계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시각"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의 관계가 '갑'과 '을'로 인식되다 보니 을이 뭔가 좋은 취지로 제도를 마련하려 해도 갑인 국회의원이 쉽게 어깃장을 놓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로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0년이 됐지만 중앙과 지방정부, 국회의원과 시·도의원의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인 사례는 이 외에도 부지기수다. 이번 시·도의원의 유급보좌관 도입 실패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작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wha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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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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