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뜬금없는 꿈은 뜬금없지 않을 때도 있다

[식담객 신씨의 밥상]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약과'



1999년 여름,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휴학을 하고 보습학원에서 일했던 나는, 한 방송사의 개그맨 시험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원서접수를 하려면 방송사까지 직접 가야 했는데, 오전에 시작해 한밤중에 끝나는 업무 때문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초조함도 커져 갔습니다.

삼성역에서 여의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처음 보는 빨간색 버스 앞창엔 여의도란 글자가 또렷합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지만, 시간에 쫓겨 차에 오릅니다.

앉을 자리를 찾아 뒷 편으로 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입니다.

“태근이 형, 이게 얼마 만이에요?”

태근 형은 고등학교 1년 선배로, 같은 하숙집에서 1년을 지냈습니다.

말을 더듬는 탓인지 말수가 적었지만, 후배들에겐 참 따뜻하게 대해주는 형이었습니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후배들 앞으로 접시를 밀어줬고, 고3 수험생 스트레스도 부린 적이 없었습니다.

팍팍한 내 형편을 알아서인지 내겐 더 각별했습니다.

하숙집을 떠나던 날 모습이 떠오릅니다.

“너희부터는 수능이지? 참고서는 줘도 쓸모가 없겠다. 줄 수 있는 건 이게 마지막이네.”

형은 깔끔하게 다려진 교복을 물려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로 무려 7년 가까이 지났는데, 오랜만에 본 태근 형이 대답을 안 합니다.

흘깃 한 번 스쳐 보더니 창밖만 바라봅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떨어진 자리에 앉습니다.

“약과 먹어.”

시험 아이템에 골몰해 있는데, 누군가 작은 약과를 건넵니다.

태근 형입니다.

“형, 깜짝 놀랐잖아. 좀 전엔 왜 모른 척했어요?”

“약과 먹어.”

“형, 나 과자 안 먹는 거 알잖아? 웬 약과래요?”

“나 여기서 내린다.”

“형, 도로 한복판인데 여기서 어떻게 내려?”

“잘 지내.”


잠시 후 버스가 서고, 올림픽대로 한복판에서 태근 형은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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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에서 도로에 선 태근 형을 바라봅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를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형의 모습이 점점 작아집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자명종 알람이 울립니다.

꿈이었습니다.

내게 따뜻하게 대해준 이에게 너무 소홀했단 생각이 듭니다.

교복까지 물려줬는데, 연락 한 번이 없었습니다.

출근길에 하숙집 후배들에게 태근 형 연락처를 묻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형을 만나면 하숙 시절 좋아했던 순대랑 제육 볶음이랑 통닭을 신나게 먹고, 분위기 근사한 바에서 칵테일도 대접하는 상상을 합니다.

밥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허기가 밀려오고, 벌써부터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이런저런 일에 쫓겨 늦은 퇴근길에 오릅니다.

수업 때문에 꺼뒀던 휴대폰을 켜니, 후배의 문자가 와있습니다.

‘형, 태근이 형 작년에 돌아가셨대요. 버스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제가 기일이었대요.’

갑자기 귓속에 삐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둔탁한 도구로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합니다.

‘약과가... 그래서 약과가 있었던 건가? 제사음식으로?’

형은 왜 내 꿈에 찾아온 걸까요?

내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던 걸까요?

미안한 마음과 무서움이 뒤섞인 기묘한 밤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만드느라 곡물과 꿀, 기름 등을 많이 허실 함으로써, 물가가 올라 민생을 어렵게 한다고 해, 고려 명종 22년(1192)과 공민왕 2년(1353)에는 제조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는 “ 그 재료인 밀은 춘하추동을 거쳐서 익기 때문에 사시(四時)의 기운을 받아 널리 정(精)이 되고, 굴은 백약(百藥)의 으뜸이며, 기름은 살충(殺蟲)하고 해독(解毒)하기 때문이다.”고 약과 재료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약과는 달고 부드러워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어, ‘이 정도는 약과’라는 표현이 생겼다고 합니다.

뇌물과 관련한 유래도 있습니다.

고급음식이라 뇌물로 사용되던 약과가 벼슬아치들의 부패가 심해지며, 가치가 낮아진 거죠.

훨씬 값비싼 뇌물들에 가려져 ‘이건 약과네.’란 말이 나왔다는 말도 재밌습니다.

항상 내게 뭔가 주었던 태근 형은, 잠시 돌아왔던 길에 약과라도 건네주고 싶었던 걸까요?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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