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세제 공평성 회복이 먼저다

박상근 세무회계연구소 대표






세제(稅制)로 재원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이를 조세원칙이라 하는데 바로 세 부담의 ‘공평’과 세제의 ‘효율’ 증진이 그것이다. 세 부담 능력인 소득에 상응하는 세금을 거두는 것이 가장 공평하다. 동일 소득에는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고 소득이 많아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공평한 세금이다. 이를 위해선 모든 소득을 과세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누진세율(현행 6~38%)로 소득세를 과세해야 한다. 한편 중소기업의 보호, 투자와 고용 촉진 등 세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평을 침해하면서 세금을 깎아주는 비과세·감면을 두고 있다.

그런데 현행 세제에는 세제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과세미달자와 비과세·감면이 무질서하고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다. 이러한 세제는 국민이면 누구나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세금을 내야한다는 국민개납주의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구체적으로 근로소득자의 절반인 802만명이 세금 한 푼 안내는 과세미달자다. 고소득자영업자들은 소득의 3분의 1 정도를 과세대상에서 빼고 세금을 신고한다. 또한 부가가치세 과세사업자의 30%(167만명)가 세금을 정상적으로 내지 않는 간이과세자다. 여기에 부동산·주식·금융소득을 비롯한 부자소득에 대한 감면을 포함해 지난해 기준 연 36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비과세·감면으로 깎아준다. 지하경제와 차명계좌, 역외거래를 이용한 탈세도 심각하다.


이런 조세 환경에서 최고세율을 올리면 고소득근로자·대법인 등 소득이 노출된 극히 일부 계층의 세금만 더 늘어난다. 세 부담의 불공평이 심화된다. 먼저 세율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과세미달자와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고 누락 세원을 발굴하는 등 세원(과세대상)을 확대해 세제의 공평성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세원 확대는 그물을 촘촘히 쳐놓아야 물고기 무리가 지나갈 때 이들을 잡을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래야 거래와 소득이 증가하는 호경기에는 세수가 늘어나고 반면에 불경기에는 세수가 줄어드는 세금의 경기조절기능이 회복된다. 이는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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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인 올해 1~7월의 세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조원이 더 걷혔다. 갈수록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데도 세수는 이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현상도 세금의 경기조절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세금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법인은 주주가 사업을 하기 위해 만든 ‘도관(導管)’에 불과하다. 법인이 벌어드린 소득은 궁극적으로 임금·배당·이자 등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 세 부담의 공평을 실현하려면 법인소득의 최종 귀속자인 개인이 부담하는 소득세를 강화하는 게 정도(正道)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 각국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기 위해 세율을 내리는 ‘조세경쟁시대’다. 이를 역행해 우리만 세율을 올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자본의 해외 탈출을 부추기는 등 경제에 비효율을 초래한다. 결국 일자리와 세수를 줄이는 폐해로 이어진다. 야당의 법인세율 인상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소비를 과세대상으로 비례세율(10%)로 과세되는 부가가치세는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 부담을 지는 불공평한 세금이다. 그러나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다량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효율’이 최대 장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 부가가치세율이 19%(2014년 기준)이고 유럽(EU)의 평균 부가가치세율은 22%에 달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부가가치세율은 10%에 불과하다. 한국이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할 여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바람직한 세제 운영 방향은 세율 인상을 자제하면서 세원을 확대해 세제의 공평성을 회복하고 낮은 법인세율로 세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다만 세원 확대와 세출구조 조정 후에도 필요한 재원이 부족할 경우 최후 증세 수단으로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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