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미래전략, 융합
정양호 조달청장
매주 토요일 늦은 밤이 되면 ‘주말의 명화’를 보기 위해 가족들이 하나둘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던 시절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은 오로지 ‘본방 사수’만으로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 프로그램은 재방송도 편성됐지만 아주 가끔이었다. 비디오가 나오면서 영화를 아무 때나 빌려볼 수 있게 됐고 2000년대에 들어서 케이블 채널, DVD, 인터넷TV(IPTV) 등의 등장으로 영화는 아무 때나 볼 수 있게 됐다.
지난 8월 리우올림픽 중계가 흘러간 주말의 명화처럼 관심이 예전만 못했던 것은 시차 탓도 있었겠지만 IPTV나 인터넷 다시보기(VOD)로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본방 사수가 사라진 시대에는 외형이 근사한 텔레비전이라는 제품이 아니라 어떤 서비스인가가 중요해진다.
산업혁명 이후 가장 대표적인 제조업은 자동차였다. 하지만 더 이상 자동차 자체만으로는 경쟁력 있는 제품이 아니다. 자동차도 서비스 상품이 됐다. 현재 부상하고 있는 전기차·자율주행차는 사실상 소프트웨어의 결합체인 서비스 상품이다. 최근 다양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물인터넷(IoT)은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연결한 대표적인 융합 제품이다. 최근의 IoT 제품 공급의 추이를 볼 때 단순 제조품의 비중이 줄고 서비스 판매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된다.
그렇다고 융합 제품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도 시장의 긍정적 반응을 얻기까지는 2~3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처음에 IoT를 소개했을 때는 공상과학소설쯤으로 흥미로만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대를 앞서는 제품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타이밍이 맞아도 생경함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일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규정의 문제도 있다. 기존 제품 때문에 만들어진 ‘안 된다’는 규정에 묶여 새로운 융합 제품의 판로가 막히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규정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거나 팔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고 규정을 함부로 풀 수도 없다. 새로운 제품이라 예기치 못한 안전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합 제품이나 융합 산업이 성장하고 범위를 넓히려면 공공 부문이 중요하다. 공공 부문의 역할은 크게 방향·제도·판로에 있다. 시장에 정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어떤 부분은 확실한 지원 대상이며 어떤 부분은 이러저러한 제한을 고려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새로운 산업이 생기면서 규정에 대한 이슈가 발생하면 바로 검토가 이뤄지고 필요하다면 규정의 신설이나 개정이 따라야 한다. 유망한 제품이라는 판단이 서면 공공 부문이 판로를 열어줘야 한다.
최근 정부가 합동으로 판로를 열어주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좋은 예다. 클라우드 경우 방향성의 제시, 탄력적 제도 적용으로 공공 부문에서부터 판로를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