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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럭키' 찌고 삶고 구울줄 알았더니... 푹 고아낸 유해진의 맛

‘유해진이 주인공인 코미디영화’ 듣기만 해도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유혹이다. ‘왕의 남자’ 아니 ‘주유소 습격사건’부터 그의 필모그래피만 훑어도 감이 온다. 말 빠른 칼잡이? 아니면 촌스런 사투리? 그것도 아니면 몸개그? 뭣이 중허든 ‘아! 이건 봐야해’ 하는 기운이 딱 온다.

‘럭키’는 남우조연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 유해진이 처음 원톱 주연으로 나선 작품이다. 포스터에도 과감하게 단독으로 나섰다. 과연 그의 선택이 럭(Luck)이 이 될 수 있을지는 물론 키(Key)로 문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개봉 전부터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건 분명 좋은 징조다.






작품의 주요 인물과 사건은 ‘열쇠 도둑의 방법’를 리메이크했다. 설정은 유사하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이야기 전개는 전혀 다르다.

눈빛만 봐도 소리소문없이 사람을 죽여버린다는 성공률 100%의 킬러 형욱(유해진)은 소매에 묻은 핏자국을 제거하기 위해 목욕탕을 찾았다가 그만 비누를 밟고 넘어져 기억을 잃는다. 반면 생활고에 삶의 의욕도 없어 죽기 직전 몸이나 깨끗이 하자며 목욕탕을 찾은 재성(이준)은 형욱의 키와 자신의 키를 바꿔치기하며 이 기회를 빌어 인생역전을 꿈꾸기 시작한다.


누가 뭐래도 유해진의 유해진을 위한 유해진에 의한 영화다. 두시간 남짓 유해진이 얼마나 객석을 뒤흔들지에 초점을 맞췄으나 흐름은 예상 외로 흐른다. 그의 연기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위해 삶고 찌고 굽고 튀길 줄 알았건만, 작품은 푹 고아낸 곰탕같은 맛을 낸다. 단발의 개그보다 묵직한 흐름을 중시한 드라마에 집중하며 잔잔한 가운데 툭툭 튀어나오는 웃음을 무기로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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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유해진은 무시무시한 킬러에서 졸지에 32살 배우지망생으로 변신한다. 기억이 끊어진 상황에서 킬러의 성격은 유지한 채 눈빛만 덜 무서운 백수아저씨가 된다. 리나(조윤희)에게 꾼 병원비를 값기 위해 그녀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취직한 그는 출중한 칼솜씨로 단무지 꽃을 만들어내거나 예리한 김밥썰기 기술을 선보이는 등 가족들과의 단란한 시간을 만들어간다.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킬러가 액션배우로 거듭나는 과정도 눈여겨볼만 하다. 곤장을 맞는 장면에서 특유의 사투리 섞인 애드리브를 시작으로, 액션 신에서 상대를 직접 때리거나 본인이 맞은 상황에서도 ‘OK에요?’를 되묻는데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전혜빈에게 사랑을 전하는 공포와 감미로움이 뒤섞인 눈빛에서는 ‘그래 이맛이야’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며 형욱이 기억을 되찾은 뒤 결말로 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아쉽다. 개연성이 부족해 배우가 직접 대사로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이준과 임지연의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려내지 못하면서 초·중반 보여준 에피소드의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전반기 흥행작의 대다수가 치고받거나 재난, 공포를 앞세운 만큼 장르영화에 지친 관객들에게 ‘럭키’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이다. MSG 넣지 않은 깔끔한 곰탕의 맛, 유해진은 소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3일 개봉.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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