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 속 최고의 무장(武將)인 관우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들고 전장을 누볐다.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의 등장 캐릭터 중 하나인 ‘천둥의 신’ 토르에게는 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 ‘묠니르’가 있었다. 그렇다면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의 쾌거를 달성한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의 손에는? 바로 전 세계 양궁장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토종 기업 ‘윈앤윈’의 활이 들려 있었다.
지난 8월 11일 브라질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는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이 진행됐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개인전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바로 8강전에서 만난 대한민국 장혜진 선수와 북한 강은주 선수의 경기였다.
한 발 한 발 신중을 기해 활을 쏘는 두 선수. 이때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북한의 강은주 선수가 들고 있는 활이었다. 강 선수가 들고 있는 활 겉면에는 ‘Win&Win’이라는 글자가 인쇄돼 있었다. 대한민국 장혜진 선수가 사용하는 활에도 역시 ‘Win&Win’이 새겨져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며 해외 양궁 선수들의 실력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 양궁이 오랜 기간 세계 1위를 유지하는 사이 다른 경쟁국가에서는 앞다퉈 ‘한국 코치 모시기’에 나섰다.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을 위협한 국가들은 대부분 한국인 코치를 영입했다. 한국 선수들과 유사한 방식의 훈련을 했고, 이를 기반으로 경기를 치렀다. 실제로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힘을 앞세운 서양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는 다소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보란 듯이 이겨냈다. 양궁인들은 이 같은 선전의 밑바탕에 한국인 특유의 정신력, 그리고 최고의 기술력을 탑재한 양궁 활 ‘윈앤윈’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번 리우 올림픽 대표팀 중 남녀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구본찬, 장혜진 선수뿐 아니라 여자 단체전 금메달 멤버인 기보배, 최미선 선수 모두 윈앤윈 제품을 사용했다. 한국 선수뿐만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전 세계 양궁 선수단의 약 40%가 윈앤윈 제품을 들고 경기에 나섰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윈앤윈은 자그만 신생기업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글로벌 양궁 장비 시장은 미국의 호이트(Hoyt)와 일본의 야마하(Yamaha)가 양분하고 있었다. 국내 선수들 역시 외산 제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 직전 날벼락이 떨어졌다. 미국 호이트사가 한국 선수단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최신 장비 판매를 거부했던 것이다. 일본 야마하의 장비를 써왔던 여자 대표팀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호이트 제품을 사용하던 남자 대표팀은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당시 올림픽에서 남자 대표팀은 개인전, 단체전 모두 미국에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박경래 윈앤윈 대표는 말한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우리 선수들이 외산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해외 업체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에 피해를 보는 사례도 현장에서 꽤 많이 목격했죠. 오롯이 우리의 기술로 만든 최고의 활을 후배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단 한 번도 사업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장비 개발에 착수했죠.”
박 대표가 양궁 선수들을 ‘후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양궁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궁 국가대표다. 고등학교 시절 연일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촉망받던 그는 1975년 초대 양궁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선수로 활약하던 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인 1981년부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박 대표는 선수 시절보다 더욱 화려한 지도자 커리어를 쌓았다. 1983년 남자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한 그는 1985년 세계 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1991년 세계 선수권에서 대표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지도자로서 최고의 정점에 오른 박 대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돌연 코치직을 사임한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1993년 양궁장비 회사 윈앤윈을 설립한다. 자신감에 가득한 도전이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박경래 윈앤윈 대표는 말한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윈앤윈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처음 양궁장비 시장에 뛰어들 때만 해도 미국 호이트와 일본 야마하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죠.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품질에서 그들을 압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체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었죠. 좋은 양궁장비의 핵심요소인 안정성과 내구성을 키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했죠. 야심차게 내놓은 첫 제품은 수출 후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돼 전량 반품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점차 내공이 쌓이더군요. 그리고 1997년 유럽 수출 시작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됐습니다.”
윈앤윈의 터닝포인트는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당시 여자 개인전에 출전한 윤미진 선수가 바로 윈앤윈이 개발한 장비 ‘윈액트’를 들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그때부터 전 세계 양궁인들은 윈앤윈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양궁 지도자가 만든 장비’라는 점은 전 세계 양궁인들에게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윈앤윈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박 대표는 말한다. “좋은 활의 기준은 속도와 정확성입니다. 선수가 쏜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원하는 곳에 탄착군이 형성되면 좋은 활이죠. 선수들은 활을 쏘는 순간 손에 전해지는 반동과 충격을 통해 도착 지점을 예상합니다. 경기를 보다 보면 간혹 선수들이 시위를 놓는 순간 몸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이는 흔들린 탄착군을 보완하기 위한 행동이죠. 이 같은 움직임을 최소화하려면 보다 더 탄성이 좋고 강도가 센 재질을 사용해 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는 철강보다 강도가 강하고 탄소섬유보다 유연한 재질인 ‘나노 카본’을 활용해 장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활을 만든 것은 저희 윈앤윈이 최초입니다.”
윈앤윈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2002년에는 장비 생산 중단을 선언한 일본 야마하 생산라인을 인수했고, 2011년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보이던 호이트를 넘어섰다. 이 같은 성과는 경쟁사인 호이트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여기서 숨겨진 비화 하나. 윈앤윈에 따르면 당시 한 해외 업체 관계자가 ‘윈앤윈의 장비 제조 설비를 견학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 업체가 바로 최대 경쟁업체인 호이트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같은 호이트의 제안을 박 대표가 수락했다는 것이다. 경쟁사에게 공장을 공개한다는 것, 이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다.
지난해 기준 윈앤윈의 연매출은 330억 원 수준이다. 매출은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을 통해 발생한다. 올해는 양궁장비뿐 아니라 새롭게 진출한 자전거 시장을 기반으로 매출 5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 대표는 “활과 마찬가지로 나노 카본 소재로 자전거를 제작해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며 “BMX(오토바이를 타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익스트림 자전거의 일종), 트랙용 자전거 등을 기반으로 고급 자전거 시장에서도 양궁장비 시장에서의 성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