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가을 저녁

- 이면우

퇴근길 버스정류장 가는 길

뒹구는 후박나무 잎새에 가만히 발 겹쳐보네


구두보다 길고 내 쪽배처럼 생긴 누런 잎

한 발로 딛고 남몰래 휘청거리네

그렇지, 물 위에 딛는 첫발은 늘 마음 먼저 출렁이지

그때 이맘때 이른 저녁 먹고 빈방에 불 켜두고


만삭인 아내 쪽배에 태워 노을 속으로 힘껏 저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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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밝은 호수 가운데 두런두런 하노라면

물결이 쪽배를 오두막 가까이 되돌려주었지

그 쪽배 지금 호수 바닥에서 혼자 서늘하겠네

그때 우리 노 놓고 무릎 맞대 무슨 말 주고받았던가

하나도 기억 못 하네 가을 저녁, 버스는 더디 오고

호수 쪽 하늘에 자꾸 눈길 빼앗기네

불 꺼진 빈방 썰렁할 것 같아 낮불 켜놓고 왔어요. 맞벌이 아내, 학원 간 아이 늦으니 오늘도 혼자 저녁 드셔야겠네요. 전기밥솥 따끈한 밥 푸고, 냉장고 반찬 차갑지만 김치찌개 데워 따뜻하게 드셔요. 추억으로 가는 소주도 한 잔 일렁이셔요. 아침 현관 부두에서 늘 당신 태우고 출항하는 구두 보았어요. 코 긁히고 뒤축 닳았더군요. 출렁이던 꿈, 휘청거릴까 걱정돼요. 나는 늘 쪽배에 있어요. 아직도 노을빛 호수로 가는 꿈 꿔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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