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잠수함이 남해로 돌아 내려와 SLBM을 발사하면 현재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탐지 및 요격이 제한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핵잠수함을 자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입 찬성 쪽은 한반도 전력상황에서 한국의 비대칭적 취약성을 다소나마 보완할 수 있는 핵잠수함을 하루 빨리 건조,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중론을 펼치는 측은 핵추진 잠수함 개발·운용 과정에서 동맹국과의 갈등과 막대한 비용 문제에 봉착할 수 있고 핵잠수함이 북한 SLBM을 막을 유일한 수단도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직후인 지난 8월24일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달 합참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핵잠수함 추진을 묻는 정치인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공격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인 현실에서 정치권이 핵잠수함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이 북한으로부터의 당면한 핵위협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로부터의 잠재적 위협에도 대처해야 한다는 점, 잠수함이 북핵을 억제하는 데 특효를 가진 응징수단이라는 점, 동시에 강자(强者)들을 견제하는 약자(弱者)의 무력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면 한국은 수십년 후를 내다보고 20년 전에 이미 핵잠수함 확보에 착수했어야 했다.
북한은 2013년 제3차 핵실험 이후부터 SLBM의 개발에 광분해 시험발사를 거듭했고 올해는 수중사출 및 수면 위 비행 능력, 즉 콜드론치(cold launch)와 핫론치(hot launch) 능력을 과시했다. 놀라운 속도로 실전배치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SLBM은 매우 위력적인 무기다. 이론적으로는 한국의 선제공격이나 미사일방어를 회피·돌파할 수 있고 괌·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위협할 수 있다. 귀환을 고려하지 않는 가미카제식 공격이라면 현 신포급 잠수함으로 더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 더 많은 SLBM을 탑재하는 대형 잠수함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요컨대 북한 입장에서 보면 SLBM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증원을 차단하는 동맹이완 효과(decoupling effect)를 노릴 수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한국의 비대칭적 취약성을 심화시켜 남북관계를 지배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군사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이 스노켈링(잠항 상태에서 수면 위 공기를 빨아들여 디젤 엔진을 가동, 축전지를 충전하는 시스템)이나 연료공급이 필요 없고 고속 잠항이 가능한 핵잠수함으로 북한의 위협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발상이다.
사실 한국의 핵잠수함 사업은 북핵이 수면 위로 드러난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어야 했고 지금은 핵잠수함 보유에 대한 결정만을 남긴 상태여야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 핵추진 엔진을 개발하는 시늉만 내다가 중단했고 해군은 1,200톤급과 1,800톤급 디젤잠수함에 안주했다. 일본이 이미 1970년대 핵추진 엔진을 실험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과거 정부들은 어려운 결정들을 후세에 미루는 ‘폭탄 돌리기’만 반복해온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미국의 ‘농축·재처리 포기’ 권고를 쉽게 수용함으로써 일찌감치 핵잠재력과 핵외교력의 뿌리를 잘라냈고 김영삼 정부는 미국이 영변폭격을 거론하자 화들짝 놀라 만류하기에 바빴다. 그 이후 정부도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하는 중에도 남북이 농축·재처리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던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을 폐기하지 않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핵잠재력을 배양하자는 전문가들의 건의도 외면했다. 이렇듯 과거 정부들은 북핵 문제의 악화를 예상하면서 향후 필요할 수 있는 조치들을 위해 미리 길을 열어두는 선제적 조치들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은 ‘충분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방어무기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다면 ‘놀랍고 해괴하다’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국군은 핵잠수함 보유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우라늄 저농축을 위한 권리를 조속히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2015년 개정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에 따른 한미 간 협의를 신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한국군은 군간 예산분배 관행이나 해군 내 사업 간 경쟁이 핵잠수함 확보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핵잠수함은 ‘적의 선제공격으로부터 생존성이 보장된 제2격(2nd strike forces)’으로서 북한의 핵발사 자체를 억제하는 데 긴요하며 전시에는 북한 잠수함을 선제 파괴하는 ‘수중 킬체인’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주변국으로부터의 잠재적 안보위협까지 감안한다면 어차피 한국은 잠수함 강대국으로 가야 한다. 정치권은 성명을 발표하고 추궁이나 하기보다는 한국군이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차분히 예산 및 제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전 통일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