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을 대표하는 '카로체리아' 꿈꿉니다"

인터뷰 | 최지선 케이씨모터스 대표, '노블클라쎄'로 럭셔리 리무진 시장 키운다



비행기 1등석 뺨치는 승객 공간을 자랑하는 럭셔리 리무진이 한국에서 나왔다. 기아차의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최고급으로 개조한 ‘노블클라쎄 카니발’이 그 주인공이다. 이 차를 만든 최지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노블클라쎄 라운지’를 찾았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이곳에는 검정색 바탕에 황금빛이 도는 갈색으로 투톤 처리된 미니밴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아자동차의 미니밴 ‘카니발’을 4인승 리무진으로 개조한 ‘노블클라쎄 카니발 L4’다. 노블클라쎄 카니발 L4는 ‘카니발 하이리무진(천장을 높이고 실내를 안락하게 꾸민 모델)’을 생산하고 있는 케이씨모터스가 지난해 자체 브랜드 ‘노블클라쎄’를 론칭하면서 처음 출시한 차량이다. 케이씨모터스는 노블클라쎄를 키우기 위해 별도 법인 ‘케이씨노블’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세련된 차림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최지선 대표를 만났다. 그는 현재 케이씨모터스와 케이씨노블 두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최지선 대표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서 공업디자인(현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엑셀, 프레스토, 쏘나타 1세대 차량의 내장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쌍용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무쏘 1세대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7개월간 출장을 떠나기도 했다.




1. 노블클라쎄 차량들. 2.노블클라쎄 카니발 L4 실내 모습. 3. 노블클라쎄 카니발 L4 트렁크에는 골프백을 세워서 보관할 수 있다.1. 노블클라쎄 차량들. 2.노블클라쎄 카니발 L4 실내 모습. 3. 노블클라쎄 카니발 L4 트렁크에는 골프백을 세워서 보관할 수 있다.


카니발 하이리무진 생산
최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건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최 대표는 말한다. “쌍용자동차에서 디자이너로 함께 일했던 남편(김한철 케이씨모터스 회장)과 사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죠. 남편은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고유한 디자인을 가진 차량을 만드는 작은 자동차 제작 공방(carrozzeria· 카로체리아)을 만들고 싶어 했죠. 그래서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97년 그는 남편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차 등 완성차 업체에서 디자인 용역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모터쇼에 출품할 콘셉트카와 쇼카 등을 만들었다. 부부는 이때를 실력을 키우는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자인 개발 용역만으론 회사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자체 사업이 필요했다. 최 대표는 말한다. “2005년에 기아차가 카니발을 처음 만들었어요. 그때 기아차 내부에 카니발의 천장을 높이고 실내를 안락하게 꾸민 모델이 필요하다는 니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쉽게 말해 카니발의 리무진 버전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한번 개발해보겠다고 말했더니 시제품(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품평회를 열어보자는 회신이 왔습니다.”

이후 기아차에서 카니발의 리무진 버전인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생산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케이씨모터스는 2006년 기아차의 특장차 협력업체로 등록해 현재까지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생산하고 있다. 케이씨모터스는 등록 전인 카니발 차량을 자사 공장으로 들여와 디자인부터 설계, 제작, 인증까지 모든 개발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한 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기아차 출하사무소에 납품을 하고 있다. 이후 판매는 기아차가 담당한다.

2006년 당시 카니발 하이리무진은 한 달에 20대 정도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수요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말한다. “월 20대에서 70대 정도로 주문이 늘었죠. 경기도 용인시에 본사가 있었는데, 바로 옆 부지를 사서 공장을 확장했어요. 2014년 6월 신형 카니발이 나오면서부턴 하이리무진 모델 주문량이 폭증했습니다.”

당시 케이씨모터스의 생산능력으론 주문 후 1년은 지나야 차량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기아차는 당장 생산 능력을 높이라고 케이씨모터스에 요구했다. 최 대표는 말한다.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운송비도 줄일 겸 경기도 이천 기아차 출하사무소 근처인 덕평에 공장을 증설했습니다. 지난해 1월 공장을 완공하고 나선 월 평균 생산능력을 400대까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다. 대량 생산 경험이 전무했던 탓이 컸다. 효율을 따지며 생산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디자인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들을 생산에 투입하면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부품을 일일이 사람이 만들고 조립해야 하고, 자동화 설비를 갖추는 것도 어려워서 숙련된 생산 인력을 뽑는 것이 힘겨웠다.

최 대표는 말한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일이 해결됐어요. 생산 전담 직원들을 뽑으면서 자리가 잡혀 나갔죠. 지금은 회사가 알려지다 보니 자동차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취업을 전제로 학생들을 보내주고 있어요. 생산직 직원들이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현재 80여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찾다
사업이 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브랜드 ‘노블클라쎄’를 론칭한 이유가 궁금했다. 최 대표는 설명했다. “기아차의 협력업체로 등록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매출처가 한곳에 집중 되어 있는 건 아무래도 위험했죠. 매출 다변화를 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지닌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계속 탐색했어요.”


최 대표는 카니발 하이리무진보다 더욱 고급스러운 차량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전 세대 카니발 전체 판매량 중 하이리무진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3%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형 카니발의 경우, 하이리무진 모델이 8%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카니발 판매량 자체도 늘었다. 최 대표는 말한다. “카니발 하이리무진이 처음 나왔을 땐 특수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그러나 요즘엔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좀 더 안락하게 가족과 이동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늘어났죠. 그 중에는 더욱 고급스러운 차량을 원하는 고객층도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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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커지는 걸 눈으로 확인한 최 대표는 차별화한 차량을 찾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법인 케이씨노블을 설립하고 노블클라쎄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노블클라쎄는 최 대표가 시작한 첫 번째 B2C 사업이기도 하다. 기존 카니발 차량의 내외장을 럭셔리 리무진 형태로 바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마케팅까지 진행하고 있다. 최 대표는 말한다. “B2C 사업 중에서도 럭셔리 비즈니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할 수 있을까, 저질러도 되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분명히 보였어요. 소비자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어서 재미가 있습니다.”

노블클라쎄 카니발은 엄밀히 말하면 카니발 하이리무진과 전혀 다른 차량이다. 이 차에는 기아차 엠블럼 대신 노블클라쎄 엠블럼이 달려 있다. 일단 겉모습부터 고급스러움이 흘러 넘친다. 차체를 두 가지 색상으로 칠하고 라디에이터그릴, 범퍼 등도 카니발 하이리무진과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제작해 장착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실내다. 호화로운 휴식· 업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좌석이 5~7개 있었던 승객석에는 널찍한 리무진 시트 2개만 남겨 운전자를 포함해 4명이 탑승할 수 있다. 전자동으로 조절되는 리무진 시트를 포함해 차량 실내는 이탈리아산 최고급 천연가죽과 스웨이드 소재를 두르고 있다. 바닥에도 천연 나무를 깔아 고급스러움을 한껏 살렸다. 자체 개발 애플리케이션이 깔린 태블릿 PC로는 차량 내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독자 개발한 전용 인포테인먼트시스템이다. 차량에 LTE 라우터를 장착해 주행 중 무선인터넷이 가능하고, 실시간 방송을 풀 HD급 화면으로 시청할 수 있다. 주행 중 화상회의도 할 수 있다. 노블클라쎄 카니발은 지난해 9월 정식 판매가 시작된 이후 법인 대표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판매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노블클라쎄 카니발 L9’을 출시했다. 기존 노블클라쎄 카니발 L4 모델의 품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6명이 탑승할 수 있는 차량이다. 최지선 대표는 노블클라쎄 브랜드를 단 다양한 차량을 출시할 계획이다. 실제로 올해 부산국제모터쇼에 현대차 미니버스 ‘쏠라티’를 개조한 럭셔리 차량을 내놓았다. 최 대표는 말한다. “노블클라쎄 차량은 자동차 전문 개발자들로 이뤄진 연구소에서 디자인, 설계, 법규 인증시험을 체계적으로 거치고 있습니다. 일반 애프터마켓에서 이뤄지는 튜닝과는 차원이 다르죠. 우리는 자동차제작사로 등록되어 있어요.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성능 시험을 거쳐 차량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리무진 형식으로 개조해 주는 애프터마켓 업체와는 차원이 달라요.”




케이씨모터스 본사 전경.케이씨모터스 본사 전경.


포기하지 않는 카로체리아의 꿈
최 대표가 남편인 김한철 케이씨모터스 회장과 함께 그렸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유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그들이 완성차 업체의 협력업체가 되는 과정에는 감춰진 이야기가 존재한다. 잠시 꿈을 접어야 했던 사연을 최 대표가 들려줬다. 그는 시간을 되돌렸다. “카로체리아를 꿈꾸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외부 용역을 받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2000년 자체적으로 프로토타입 스포츠카 ‘PS2’를 만들었습니다. 프레임과 바디를 만들어서 완성차 업체의 부품을 조합했죠. 카로체리아들이 하는 방식입니다.”

당시에는 PS2가 캐시카우가 될 줄 알았다. PS2를 양산하기 위해 최 대표와 김 회장은 모터쇼가 열릴 때마다 업그레이드된 PS2를 선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2007년까지 투자자들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자동차를 양산하는데 얼마나 큰 자금과 인력이 필요한지 모른 채 의욕만 앞서 있었다. 2007년의 일이었다. 그 때 ‘어울림정보통신’이라는 회사를 만나게 됐다. 최 대표는 말한다. “어울림 정보통신 대표는 자동차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자금과 생산을 자기들이 담당할 테니 양산할 수 있는 차를 개발해 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차량 개발 회사인 ‘어울림모터스’를 만들고 제가 개발을 책임졌어요. 2007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인증까지 다 받았죠. 그렇게 나온 차가 2010년 출시한 ‘스피라’입니다. 당시 언론에 국내 최초의 수제 스포츠카라고 많이 나왔죠. 하지만 모기업인 어울림정보통신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제대로 판매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희도 손을 뗄 수밖에 없어 당시 스피라 개발 인력들이 케이씨모터스로 옮겨왔습니다.”

케이씨모터스는 다양한 이동 수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엔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늘고 있다. 모터와 배터리 등을 납품받아 자체 제작한 차체에 조립하면 전기차를 제작할 수 있다. 케이씨모터스는 자동차 제작자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얼마든지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최 대표가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사실 PS2를 만들기 전에도 고민한 일이었어요. 당시 전기차를 개발할까, 아니면 스포츠카를 만들까 직원들과 논의를 많이 했죠. 그 때 해외 조사도 해봤습니다. 골프장 카트 모양의 전기차가 나와 있었죠.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예전에 용역을 받아 전기차를 디자인했던 경험도 있었고요. 하지만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정했죠. 전기차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실적으로도 당시엔 전기차보다 스포츠카 시장이 더 가능성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최 대표는 새로운 개념의 이동수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가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할 지 여부를 지켜보는 중이다. 어느새 꿈과 현실의 차이를 가늠할 줄 아는 사업가의 냉철함이 그에 머리에 똬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말한다. “스피라를 개발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차 한대를 온전히 개발한 경험이 지금 우리 사업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셈이죠. 지금은 현실적으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새로운 시대의 카로체리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능력과 생산이라는 두 바퀴가 굴러가야 카로체리아가 될 수 있어요. 이 능력을 갖고 새로운 시대의 이동수단을 개발하는 카로체리아가 되기 위해 매진할 겁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하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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