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는 현재 미국·멕시코·러시아 등 주요 지역 딜러들을 한국에 초대한 상태다. 매년 지역별로 딜러를 선별해 국내로 불러들이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해외 판매 부진 등 연간 판매실적 달성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남은 4·4분기 판매 확대를 위해 딜러들을 더욱 독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대차 내부에는 고위임원부터 사원까지 긴장감과 위기의식이 퍼져 있다. 한편으로는 올해를 현대차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2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양웅철 현대차 부회장 역시 최근 불거진 품질 논란에 대해 “회사에 좋은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더욱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전체가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있지만 파업이 휩쓸고 간 상처는 상당하다. 판매 일선에서는 파업의 영향으로 올해 현대·기아차의 최대 기대작인 신형 그랜저와 모닝의 출시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회사의 생산 및 품질과 노사관계, 글로벌 마케팅 등 3박자 전반에 대해 그동안의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된 부분과 그냥 덮으려 했던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관계자는 “삼성의 갤럭시노트7 사태에 가려 엔진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지만 자체적으로 자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매년 적당하게 타협해온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손을 맞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기아차의 다중 위기는 결국 회심의 작품으로 생각했던 전략 차종의 출시 지연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기아차는 올해 말 출시를 계획 중이던 신형 모닝을 내년 2월께로 미뤘다. 당초 오는 11월에 선보일 방침이었지만 회사 판매 상황을 고려해 한 해 늦추기로 했다. 신형 모닝은 2011년 출시된 2세대 모델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풀체인지 모델로 기아차가 올해 가장 기대하던 차종으로 꼽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말에 모닝을 출시해 4·4분기 판매 확대를 꾀하려 했지만 하반기 대대적인 할인공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신차를 내놓는 것이 손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야심작 신형 그랜저의 출시 지연은 너무 뼈아프다. 현대차는 11월 중순 신형 그랜저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조 측이 올해 24차례나 파업을 이어가면서 시험생산에 돌입하지도 못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최대한 예정된 출시일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상태라면 11월 말로 다소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처럼 올 하반기 판매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신차 출시 계획까지 틀어지게 될 경우 연간 사업계획 달성은 더욱 힘든 실정이다. 정부가 기획한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통해 그동안 켜켜이 쌓여 있던 재고를 털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파업과 지진·태풍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초 사업계획으로 잡았던 813만대 판매는 물론 800만대를 넘어서는 것조차 불투명하다.
현대·기아차는 올 들어 9월까지 전년 대비 판매량이 10만대 감소했다. 800만대를 넘기려면 남은 3개월간 매달 80만대가량을 판매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다. 회사 내부에서도 2013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700만대 후반 수준으로 판매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노조 파업과 특근 거부 등으로 총 14만2,000여대의 생산 차질과 3조1,00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3·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감소한 1조1,000억원을 밑돌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달 국내 4만1,548대, 해외 34만5,754대를 포함해 총 38만7,302대를 판매했다. 전체 판매는 2%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국내 판매와 국내 수출 공장이 20%나 줄면서 파업에 따른 타격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드러냈다. 현대차의 내수판매는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주력 모델 노후화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0% 축소됐다. 현대차는 현재까지 당초 수립한 사업계획보다 2만여대 못 미치는 실적을 내고 있다. 기아차도 현대차와 상황이 비슷하다. 기아차는 지난달 국내 3만8,300대, 해외 19만7,113대 등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증가한 23만5,413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해외 상황도 어렵다. 인도·유럽 등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미국·러시아·브라질 등에서 여전히 판매가 주춤한 상태다. 현대차는 최근 중국 임원들을 대거 교체하면서 남은 3개월간 중국 판매에 열을 올릴 방침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12일부터 중국 출장길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부회장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현지 법인 임원들과 회의를 하고 4·4분기 판매 확대를 위한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판매목표에 근접하기 위해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은 중국뿐”이라며 “해외 시장의 판매 성과가 남은 4·4분기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