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유권해석 요구에 정부가 법 유권해석을 위한 합동 태크스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법무부·법제처 등 법률에 정통한 부처가 나서 권익위원회의 과도한 유권해석과 법 적용으로 인한 혼선을 줄이겠는 취지다. 하지만 권익위는 논란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직접적 직무 관련성’ 부분 등에 대해 기존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인데다 법 자체의 모호성 등을 감안할 때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청탁금지법 관련 관계부처장관회의를 열고 법무부와 법제처가 참여하는 청탁금지법 해석 지원 TF를 구성해 유권해석을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특정 부처의 소관 법률을 다른 부처가 나서 유권해석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특히 법률 해석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법무부와 법제처가 나선 것은 역으로 권익위의 유권해석이 법리적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황 총리도 이날 회의에서 “구체적 행위 유형이 청탁금지법령에 위반하는지,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며 “권익위 등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교육과 홍보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황 총리는 “이로 인해 공직자 등이 필요한 대민소통을 기피하고 소극적인 민원처리를 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면서 “권익위는 법령 해석에 대해 법무부·법제처 등과 협력 체계를 갖춰 보다 체계적으로 검토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권익위의 유권해석 부실을 질타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도 각 부처의 장관들은 쪽지예산(기획재정부), 교사의 캔커피 수수(교육부), 공연담당 기자의 무료공연 관람(문화체육관광부)등 사례별로 유권해석을 물었으나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등 혼선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실은 법무부나 법제처가 논란이 된 과도한 조항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권익위의 유권해석으로 혼란이 발생한 부분을 법무부와 법제처가 명확히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최근 국회에서 논란이 된 직접적 직무 관련성이나 공무수탁사인의 범위도 논의할 수 있고 대법원이 자체 매뉴얼에서 지적한 권익위의 과도한 해석에 대한 비판도 많이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타 부처 법령 해석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카네이션법’ ‘캔커피법’으로 불리며 일상생활까지 법으로 금지한 권익위는 여전히 기존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혼란을 가져오는 주요 원인인 직무관련성과 공무수탁사인에 대한 입장은 기존대로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스승의날 카네이션이나 교수에게 캔커피를 줘서는 안 된다는 논란은 청탁금지법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데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있다”면서 “직접적 직무관련성이나 공무수탁사인에 대한 원칙은 개별 사례의 유권해석 틀을 논의하는 TF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자체적으로 청탁금지법 매뉴얼을 만들면서 잠재적인 직무관련성까지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면서 외부강의료 규제 적용 대상, 법령의 범위 등에 대해 권익위보다 좁게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권익위 관계자는 “대법원과 협의한 결과 잠재적 직무 관련성에 대한 해석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법제처는 권익위가 청탁금지법을 국회에 제출할 때 심의를 맡았던 부처다. 다만 법무부와 법제처의 실무 관계자들은 “TF에 참여하되 권익위가 주도해서 할 일”이라고 답변하고 있어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직접적 직무관련성에 따라 교사에게 100원도 줄 수 없다는 권익위의 판단은 대가성이 있다면 단돈 100원도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뇌물죄의 원칙을 가져온 것”이라면서 “청탁금지법은 대가성에 관계없이 처벌하되 사회상규상 ‘3·5·10 규정’ 이내에서 예외를 인정한다는 법률대로 해석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