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기능한국의 부끄러운 역사

서승직 인하대 명예교수·전 기능올림픽 한국기술대표

성과주의 빠진 한국위원회의

브라질기능올림픽 성적 왜곡

신뢰 회복 위해 바로 잡아야



“부끄러운 1등보다 떳떳한 2등이 자랑스럽다.” 이는 한국 기능사의 수치스러운 왜곡을 우려한 기능인의 목소리다. 한국은 지난해 브라질 기능올림픽에서 종합순위를 결정하는 통상적 기준인 종합 메달 포인트에서 97점을 획득해 105점을 얻은 브라질에 져 종합2위를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순위 결정과 무관한 비교지표인 평균 메달 포인트와 평균 스코어가 1위이고 금메달 수가 브라질보다 많다는 것을 내세워 종합우승을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성과 뻥튀기’라는 국민적 지탄을 불러왔다.

기능올림픽의 국가별 종합순위는 스포츠올림픽처럼 지난 2003년까지는 금메달 우선순위로 해왔으나 2005년부터 정량적 평가방법인 종합 메달 포인트 제도가 도입됐다. 종합 메달 포인트는 참가직종에서 획득한 금(4점), 은(3점), 동(2점), 우수(1점)를 합한 점수로 국가별 종합순위를 결정하는 통상적 기준으로 한국은 종합점수·종합순위 등으로 표기하고 적용해왔다. 기능올림픽조직위원회(WSI)는 종합 메달 포인트 외에도 세 가지 비교지표를 발표하지만 이는 종합순위와 무관한 회원국의 직업 교육을 위한 참고자료일 뿐 한국은 결코 종합순위 결정에 반영한 적도 없고 반영할 수도 없는 지표다.


우리나라는 기능올림픽대회마다 보고서(백서)를 작성해 배포해왔다. 특히 입상성적에 관한 한 종합 메달 포인트를 기준으로 참가국 10위까지의 종합순위는 물론 직전 대회 순위까지도 비교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2005년 핀란드 대회부터 종합 메달 포인트를 기준으로 국가별 종합순위를 일관되게 매겨왔다. 이런 명명백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 가지 기준으로 우승국을 발표하지 않는 WSI의 방침에 따라 한국위원회는 2007년 이후 관행대로 금메달 수와 4개 지표 결과를 종합해 종합우승이라고 발표했다”고 황당무계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이 주장은 역대 보고서와 극명하게 다르다. 특히 2007년 보고서의 ‘국가별 종합순위 (total medal points)1위’라는 기록 등이 황당함을 대변할 뿐이다. 역대 보고서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은 성과 뻥튀기에 빠진 한국위원회의 전문성 부재에서 비롯된 일로 대국민 기만행위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종합우승 공적으로 정부 포상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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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와 산업인력공단의 주장대로 종합우승이라고 발표한 근거가 사실이라면 산업인력공단은 지금까지 국민 혈세로 엉터리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된다. 종합우승이 거짓이라는 여론이 들끓자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중요한 것은 논란에 대한 해명이 아닌 기능인의 사기라는 입장을 언급한 바도 있다. 논란의 본질을 호도한 발언이다. 공공기관이 자기모순에 빠진 것도 놀랍지만 막강한 조직력을 통한 왜곡된 해명과 기능한국의 역사적 기록까지 모호하게 바꾼 일련의 조치 등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다. 또 최근에는 보고서에 언급한 ‘조직위원회 공식 발표에 따름’을 무시하고 거짓을 정당화하기 위한 종합우승 규정까지 만들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성과 뻥튀기가 아니라면 각 직종에서 당당하게 세계를 제패한 기능인의 국위 선양 쾌거를 평가절하시키면서까지 종합우승을 주장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한국은 종합우승에만 몰두했을 뿐 아직도 기능올림픽이 추구하는 보편적 이상을 실현할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속 빈 강정 같은 기능강국일 뿐 기능선진국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창립 반세기를 맞은 기능한국의 시급한 과제는 전문성 부재로 실종된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시스템 혁신이다. 혁신은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기능인의 자긍심과 명예 회복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성과 뻥튀기는 능력 중심 사회의 표상인 기능선진국의 실현은커녕 헛된 꽹과리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거짓은 정당화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래 속일 수도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서승직 인하대 명예교수·전 기능올림픽 한국기술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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