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지식문화 선진국 도약, 교육에 달렸다

김진수 선비리더십 아카데미 회장·전 현대차 일본법인 대표

물질문화 눈부신 발전 이뤘지만

철학·이념 등 정신부문 수입 의존

사회 곳곳서 맹점 불거져 나와

기본적 교육부터 개선해나가야



16세기 말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일본은 군사편제에 ‘피로인(捕虜人)부’를 따로 둬 조선의 지식인, 기술인, 양반집 어린이들을 싹쓸이하다시피 끌고 갔다. 일본은 조선 도공의 기술로 세계 최고의 도자기 생산국이 됐고 조선의 ‘선비정신’과 퇴계의 ‘경철학(敬哲學)’을 수입해 수준 높은 ‘사무라이’ 무사도를 확립했다. ‘에도막부’를 수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실천성리학’을 막부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 후 19세기 말인 1899년 ‘무사도:일본의 영혼(Bushido: The soul of Japan)’이라는 책이 발간됐다.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하루아침에 일본에 대한 인식을 야만국가에서 문명국가로 바꿔놓았다. ‘무사도’의 저자인 니토베 이나조는 미국과 독일에 유학한 후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일본인 외교관이다. 그는 조선의 ‘선비 정신’에 일본식 옷을 입혀 ‘사무라이 정신’을 기리는 글을 써 ‘무사도’라는 책명으로 서양에 수출했다. 당시 일본은 서양에 수출할 수 있는 변변한 상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상품 수출보다 정신 수출을 먼저 시작했다. 이 책은 충효·신의·예절·청렴·검약·용기·지조·기개 등의 선비 정신을 사무라이 정신의 규율로 소개했다. 이웃 나라의 오래되고 고유한 정신문화를 수입해 마치 그것이 자기 나라의 고유 문화인 것처럼 서술하면서 연유와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엄격히 말해 비양심적 표절 행위임이 분명하지만 이 책은 나오자마자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돼 일본의 이미지를 문화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은 지난 2011년부터 상품 교역량이 1조달러를 돌파해 무역순위 세계9위로 올라섰다. 이는 한국 상품이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고 일류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인이 눈을 뜨면 켜는 스마트폰·텔레비전·컴퓨터는 한국제다. 지구촌의 가정마다 있는 냉장고와 세탁기도 한국제다. 지구촌의 도시와 도로에서는 한국제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오대양에 떠 있는 선박의 약 4할은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선박이다. 이렇게 물질 부문에서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하지만 정신 부문은 어떠할까. 한국은 철학·사상·이념·가치·교육·문화 등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우리가 외국으로 수출했던 정신 부문을 우리는 오늘날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신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던 국가에서 가장 뒤처진 국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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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세종 때 세계 최고의 지식 기반 문화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영조·정조 때는 유럽의 영국이나 이웃 나라인 중국보다 오히려 문화생활 수준이 높았다. 조선의 종이(한지)와 서적은 중국으로 수출됐다. 종이 품질과 인쇄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의 교육 수준이 세계 최고였다는 점을 상징한다. 조선은 세종 때 이미 토론문화가 정착됐다. 집현전은 학자들의 토론 방이었다. 조선의 어전회의는 토론으로 시작해 토론으로 끝났다. 임금이 토론하니 사대부가 토론하고 사대부가 토론하니 양반이 토론하고 양반이 토론하니 평민도 토론을 생활화했다. 전국 어디에나 ‘사랑방’이라는 토론 장소가 개설됐다. 당시의 학교인 서당·서원·향교·성균관의 교육도 질문과 대화·토론 중심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제생문답(諸生問答)’을 읽어보면 다산은 찾아온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는커녕 질문만 한다. 여기에는 일방통행식의 지식 주입이 없다. 다산은 질문을 통해 제자들이 자연과 모든 생명 존재를 사랑해야 하는 이치를 깨닫도록 했으며 사람의 경제적 자립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구체적으로 일깨워줬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맹점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교육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교육 시스템이 정상화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우민화 교육 시스템과 대한민국의 주입식 암기 교육 시스템이 지금까지 건재하다. ‘우민화’ 교육을 ‘천재화’ 교육으로 바꾸고 주입식 암기교육은 질문과 토론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독일은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주입식 교육을 했다. 그러다가 얼마 못 가 나라가 망했다. 독일 지도자들은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해 나라가 망한 원인은 잘못된 교육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후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질문과 토론식 교육으로 바꿨다. 오늘날 유럽연합(EU)을 이끌고 있는 독일의 성공 배후에는 교육혁신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이 교육혁신으로 국가를 개혁했는데 대한민국이 교육혁신을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김진수 선비리더십 아카데미 회장·전 현대차 일본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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