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10월 6~15일)가 혹독한 성년식을 치르며 폐막했다. 부산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 논란 이후 벌어진 정치 외압 등으로 올해는 개최마저 불투명했지만 299편이 출품되는 등 예년 수준의 작품을 확보해 선전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개막 직전 찾아온 태풍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부산영화제를 찾은 관객이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전년 대비 30% 가량 급감하는 등 영화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축제 분위기 위축 속에서도 아시아필름마켓이 호평을 받고 ‘부산행’, ‘아수라’ 등 한국영화가 판매 호조를 보이는 등 성과도 만들어 냈다. 지난 1996년 시작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2016년 스무살 나이를 맞아 시련속에 성장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지난 15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개최한 결산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작년 대비 27.4%나 줄어든 16만 5,149명에 그쳤다고 밝혔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기간 극장 좌석 수가 3,700석, 상영횟수는 65회 감소하고 태풍 ‘차바’로 해운대 비프빌리지가 문을 닫아 유동인구 유입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김영란법으로 전반적으로 조심스럽고 위축된 분위기도 있었다”고 관객 급감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기업의 후원으로 진행됐던 배우 및 영화 관계자 초청 행사가 대부분 무산되거나 축소됐다. 영화제로 가을 특수를 누려오던 부산 상권도 직격탄을 맞았다. 해운대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작년에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올해는 파리만 날렸다”며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배우들도 찾질 않는데 관객들이 찾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25% 가량 급감하고 촉박했던 준비 기간에도 아시아필름마켓은 성황을 이뤄 원천 콘텐츠 시장으로의 도약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난 8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이 행사에는 일일 평균 3,000여 명이 다녀갔으며,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서는 국제공공제작 및 투자 관계자들과 미팅 550건이 성사됐고, 또 ‘부산행’, ‘아수라’ 등 한국 영화 수출이 호조세를 보인 것. 또 콘텐츠판다의 ‘판도라’, CJ E&M의 ‘마스터’, 쇼박스의 ‘럭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당신 거기 있어 줄래’ 등의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부산영화제가 세계 최초로 지난해 개설한 엔터테인먼트 지적재산권(E-IP) 마켓은 새로운 종류의 필름마켓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E-IP 마켓에서는 웹툰·웹드라마·원안스토리 등 영화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이야기 형태의 모든 저작물이 거래된다. E-IP 마켓의 원천콘텐츠를 소개하는 E-IP 피칭 행사에는 알리바바·바이두·화책유니온 등 중국의 주요 영화업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130여 업체가 참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아시아 신인 감독의 작품에 주는 뉴 커런츠상은 모두 중국 감독에게 돌아갔다. 중국 왕수에보 감독의 ‘깨끗한 물 속의 칼’과 장치우 감독의 ‘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 특별언급상은 아프가니스탄 나비드 마흐무디 감독의 ‘이별’이, 비프메세나상은 한국 성승택 감독의 ‘옆집’, 필리핀 셰론 다욕 감독의 ‘폭동의 시절’이 각각 차지했다. 또 선재상은 한국 김소윤 감독의 ‘아는 사람’과 카자흐스탄 예르잣 에스켄디르 감독의 ‘오프-시즌’이 각각 수상했다. 올해의 배우상은 ‘꿈의 제인’에 출연한 배우 구교환·이민지의 몫이었다.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을 맡은 배우 김의성은 심사평에 앞서 “부당하게 기소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지지한다”며 “영화제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생각할 수 있는 영화제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개막일인 지난 6일 레드카펫에서 ‘INDEPENDENT FILM FESTIVAL for BUSAN’(부산영화제가 독립적인 영화제가 되길)이라고 적은 종이를 펴들고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부산=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