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여신전문금융회사채 등 채권시장에 때 이른 연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통상 결산을 앞둔 연말에는 투자심리가 위축돼 회사채 투자를 꺼리지만 올해는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는 분석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003490)이 전날 실시한 1년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유효 수요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 BBB급으로 낮은 신용등급과 항공산업 전반에 대한 신용도 전망이 밝지 않은 점이 기관투자가들의 외면을 불러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대한항공의 흥행 실패는 비우량등급의 한계이기는 하지만 우량등급인 AA급에서도 투자심리가 심상치 않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AA)는 1,000억원 발행에 700억원의 미매각을 냈다. 현대제철(004020)(AA-)과 LG디스플레이(034220)(AA-)는 나란히 1,000억원씩 증액 발행했지만 현대제철이 시가평가금리에 최대 20bp를 추가로 얹을 정도로 분위기는 좋지 않다. 회사채시장의 먹구름은 앞서 실시한 A급 회사채의 수요예측 부진으로 조짐이 보였다. 휴비스(079980)(A-)와 풀무원(017810)(A-)이 지난 6일 나란히 2·3년물 400억원, 3년물 300억원 규모로 수요예측을 했지만 각각 200억원·50억원의 미매각 물량이 나왔다.
투자자들의 크레디트채권에 대한 선호를 볼 수 있는 신용스프레드(만기가 같은 국고채와의 금리 차이)도 지난달 초부터 꾸준히 상승세다. 채권평가사 NICE피앤아이의 통계를 보면 신용등급 ‘AA-’인 회사채 3년물의 신용스프레드는 14일 기준 41.7bp(1bp=0.01%포인트)로 지난달 1일에 비해 6.3bp 확대됐다. ‘A+’ 회사채 3년물 신용스프레드도 지난달 1일과 비교하면 7.3bp 올라갔다. 신용스프레드의 확대는 회사채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이어서 기관들의 투자 선호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캐피털·카드 등 여전채의 신용스프레드 변동은 더 급격하다. ‘AA-’등급 여전채 3년물 신용스프레드는 14일 현재 지난달 초에 비해 16.8bp나 불어났다. 시장에서는 여전채시장의 돈맥경화가 회사채로 전염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연말 효과’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경록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올해는 연말 미국 금리 인상 전망에 일부 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 투자수요의 강도가 약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전채시장의 부진은 무엇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독자신용등급제도가 금융회사부터 시행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의 신용등급이 재평가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작용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여기에 캐피털사의 신용전망이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신용평가사들의 견해는 투자심리를 식혔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크레딧팀장은 “기관이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 사이 자금을 집행해 단기적으로는 신용스프레드가 안정되겠지만 연말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다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연말 효과를 논하기 이르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민정 한화투자증권(003530) 연구원은 “미 기준금리 인상 전에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비용을 아끼려는 기업의 자금 수요가 단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삼성물산(028260)(AA+), 서브원(AA-), 동원산업(006040)(AA-), 현대산업(012630)개발(A) 등이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앞서 이달 14일 AJ네트웍스(095570)(BBB+)는 1.5년물·2년물 2,500억원 규모 수요예측에서 2,700억원을 모아 200억원 증액 발행까지 성공해 눈길을 끈다. 종합렌털사업자로서 영업기반과 수익창출 능력이 안정적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