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지도부가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대러시아 제재에 한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하면서 또 한번 ‘하나의 유럽’의 민낯을 드러냈다. 논의가 한창인 시각 러시아는 영국 영해 인근에 항모전단을 보내는 ‘무력시위’에 나서 군사적 긴장감을 높였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벨기에 브뤼셀에서 9시간 동안 진행된 E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시리아 알레포에 대한 러시아 공습과 관련해 “지금 이뤄지고 있는 잔혹행위가 계속된다면 EU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고려하겠다”는 최종 합의문을 작성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이 강력히 주장하던 신규 대러 경제제재 조치는 결국 합의문에 담기지 못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등 반대 측 정상들은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 등과 관련해 대러 경제제재가 이뤄진 상황에서 추가 제재는 큰 효과 없이 대러 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렌치 총리는 이날 새벽2시(현지시간) 회의장을 나서며 “제재를 언급한 문구를 넣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올랑드 대통령은 대러 제재가 향후 회의 의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며 “이런 제재 결정을 EU가 내릴 것이지만 오늘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여지를 남겼다.
EU 정상들의 격론이 오가는 와중에 러시아는 영국을 향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항공모함 ‘아드미랄쿠즈네초프’호와 2만5,000톤급 핵추진 순양함 ‘표트르벨리키’, 7,500톤급 대잠함 2척, 지원함 등으로 구성된 러시아 항모전단은 20일 영국 에든버러에서 160㎞가량 떨어진 북해 중간을 항해했다. 시리아로 향하는 항모전단은 시리아 인근 지중해 동부에 배치된 러시아 해군 지중해 함대에 합류해 러시아 공군의 시리아 공습작전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영국 해군은 구축함 2척을 급파해 러시아 항모전단의 이동 상황을 추적하면서 대응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항모전단 전개는 러시아가 시리아에 대한 전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든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시위”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