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임원급 인사 문제로 ‘딜레마’ 상황에 빠졌다. 금감원 출신 임원이 금융 관계기관의 임원으로 내려가면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재연되며 정치권과 시장의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내부 인사적체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는 탓이다.
한국증권금융은 2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양현근(56·사진) 금감원 부원장보를 부사장(상임이사)에 선임했다. 증권금융은 당초 임시주총을 지난 19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금융 관계기관의 낙하산 인사와 관련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인선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부원장보는 1978년 한국은행에 입사한 뒤 1999년 금감원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투자감독국장·은행감독국장·기획조정국장 등을 거쳤다. 이에 앞서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의 이은태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부이사장)도 7월 선임 과정을 거치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금감원 출신 인사가 각종 논란 속에서도 금융 관계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나오는 것은 내부 인사적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2월 취임하면서 임원과 주요 국·실장을 대부분 1960년대생으로 물갈이했지만 금감원의 고질적인 인사적체 문제는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금감원 임직원 수는 2010년 1,500명 수준에서 올해 1,900명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승진할 때가 됐는데도 원래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직원들이 수두룩해도 임원과 간부 수를 늘리기 어려운 처지다.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보장된 금감원 임원의 3년 임기(한 차례 연임 가능)가 실질적으로는 보장되지 못하는 점도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금감원장이 교체되면 임원들이 임기에 관계없이 사표를 내고 물러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종구 수석부원장을 비롯해 조영제 부원장, 허창언·김진수 부원장보 등이 2년 가량 일하다 ‘용퇴’ 한 전직 임원들이다. 이번에 유관기관으로 이동하는 양현근 부원장보 역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8개월 만에 금감원을 떠난다. 전직 금감원 임원 출신의 한 관계자는 “임기 2년쯤 지나면 사퇴 압박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