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종합화학은 넥슬렌 2공장 착공을 계획보다 1년 정도 앞당겨 내년 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삽을 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은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 회사인 사빅과 합작, 지난해부터 울산에서 넥슬렌 1공장을 가동 중이다. 넥슬렌 1공장은 현재 엘라스토머 10만톤을 포함해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연간 23만톤가량 생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착공 계획을 확정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최근 경쟁사들이 잇따라 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어 합작사와 2공장을 당초 예정보다 빨리 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넥슬렌 1공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해외 사업 전략인 ‘글로벌 파트너링’의 주요 성공 사례로 꼽힌다. 따라서 SK는 이번 증설을 성사시켜 글로벌 파트너링의 성과를 극대화시킨다는 의지가 강하다. 최 회장은 지난 2010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세계 2위 석유화학 기업인 사빅의 무함마드 알마디 당시 부회장을 만나 합작을 제안했고 이후 양사는 50대50으로 7,100억원을 투자해 넥슬렌 1공장을 완성했다.
넥슬렌 2공장의 정확한 규모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1공장의 2~3배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SK종합화학은 최근 대규모 엘라스토머 설비 증설을 시작한 LG화학의 행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LG화학은 충남 대산에 지은 연산 9만톤짜리 엘라스토머 공장에 4,000억원을 투자해 29만톤으로 규모를 확장하는 공사에 돌입한 상태다. 완료 예상 시점은 오는 2018년이다.
엘라스토머는 폴리에틸렌을 대체할 차세대 석유화학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플라스틱처럼 가공이 쉽고 탄성은 고무와 맞먹을 정도로 우수해 자동차 소재부터 전선케이블 피복재, 운동화 충격흡수용 밑창, 기능성 필름 등에 고루 쓰인다. 일반 폴리에틸렌 대비 10% 이상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이지만 기술 수준이 높아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공급이 달린다. 미국의 다우케미칼과 엑손모빌이 각각 81만9,000톤, 74만9,000톤 정도를 생산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일본 미쓰이(31만7,000톤)와 SK종합화학·LG화학이 뒤를 바짝 쫓는 형국이다.
SK와 LG는 중국·인도 등의 추격 때문에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범용 화학 제품 비중을 줄이고 차별화된 고부가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두 회사가 엘라스토머 경쟁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 사우디에서 22만톤 수준의 엘라스토머 공장 건설을 시작하고 오는 2020년 후 미국에서도 60만톤을 증설할 것으로 예고한 만큼 국내 기업들이 설비 확장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에 저유가와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최근 사내 임직원 대상 강연에서 “지난 10여년 간 기업 가치(시가총액)가 큰 변화 없이 10조원대에 머물고 있다”며 “영업이익을 4조~5조원대로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우리가 중장기 목표로 삼은 기업 가치 30조원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