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연설문과 좌석 배치도

정양호 조달청장



고위직이 될수록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많아진다. 행사에는 보통 주요 인사들의 축사 시간이 있다. 실무자들이 준비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기관장에 따라 자기 스타일에 맞춰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행사장 주요인사로 정치인도 초청된다. 정치인 축사는 특징이 있다. 철저히 참석자의 심기경호(心氣警護) 중심이다. 참가한 분 칭찬에서부터 시작해 여기 계신 분들을 위해 본인이 열심히 뛰고 있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듣는 사람 기분 좋고 표 관리에 도움이 되면 그것이 최고다.


공무원은 다르다. 정치인과는 달리 철저히 콘텐츠 중심이다. 그런데 참석자 관심 사항과 행사 상황과 관계없이 자기 철학과 정책 방향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세계 경제 상황이 어렵고 우리는 이런 처지니까 구조개혁을 빨리해야 한다는 식이다. 사실 행사장에서 축사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필자가 알고 있는 지인은 행사장 가는 시간을 축사 끝나는 시간에 맞춘다고 한다. 축사 듣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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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것이 우리의 민낯이라고 본다. 이제는 공직에서 상급자의 행사 참여 때 필요한 축사를 준비하고 좌석배치도 그리는 일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꾸면 좋겠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실무자는 행사 개요, 참석 대상자와 관심사항, 행사에서 꼭 전해야 할 메시지 중심으로 간단히 메모보고를 하고 손을 떼자. 그다음은 기관장 몫이다. 기관장은 공직생활을 수십 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과잉 충성, 과잉보호는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 상황에도 잘 맞지 않는 축사와 불필요한 의전 챙기기에 시간 소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짜 중요한 일을 하면 좋겠다. 이것이 불필요한 일 버리기의 시작이다.

사람은 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일에 치여 지내게 되면 정작 중요한 일을 못 하는 법이다. 정말 공직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일들을 찾아 제대로 해보자. 그 전제 조건이 불필요한 일 버리기다. 연설문 작성과 좌석 배치도 그리기와 같이 상사에게 큰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실무자의 시간을 뺏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찾아보자. 한 간결한 축사 전문을 소개한다. 얼마나 간결하고 의미 있는 멋진 연설인가. 내가 모시는 상사에게도 처칠처럼 명연설할 기회를 줘보자.

“절대 굴복하지 마라. 절대 굴복하지 마라. 절대, 절대, 절대… . 위대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크든 작든. 명예와 선의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에도 굴복하지 마라.” 정양호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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