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저서로 본 트럼프의 정책방향] "NYSE는 도박장" "中은 염탐꾼"...뒤죽박죽 가치관 고스란히

부유층 세금 줄인다더니 "헤지펀드 과세 강화" 엇박자

저금리 외치면서 "연준 느려터졌다" 늑장 인상 비판도

여과 없는 언행 정책화 땐 외교·교역 곳곳서 마찰 불가피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국내에서 ‘부동산 재벌’ ‘아웃사이더’ ‘막말꾼’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 20개월간 지속된 미 대선 레이스에서 그의 거침없는 말들은 전파를 타고 국내에도 여과 없이 전달됐고 ‘트럼프=좌충우돌 정치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도 자신을 “‘거래의 기술(원제 The Art of the Deal·1987)’의 저자 트럼프입니다”라고 웃으며 소개할 만큼 작가로서의 애착도 갖고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만 500만부 이상 팔렸고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에서 32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은 때로는 휘발성이 강한 말 한마디 대신 정제된 표현이 담긴 저서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베스트셀러’ 작가인 트럼프의 책에는 좌충우돌하는 그의 언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아끼는 저서 ‘거래의 기술’을 보면 주식시장에 대한 강한 반감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나는 뉴욕 증권거래소(NYSE)야말로 세계 최대의 도박장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NYSE가 보통 도박장과 구별되는 유일한 점은 도박사들이 푸른 줄무늬 양복을 입고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뿐”이라고 썼다. 대학 졸업 후 부친으로부터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은 뒤 숱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억만장자가 된 트럼프 입장에서는 ‘돈이 돈을 버는’ 주식시장이 못마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도 뉴욕 월가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시하며 쇠락한 제조업 노동자들(러스트벨트 지역)의 표심을 얻어 힐러리를 제쳤다. 트럼프가 대선 승리 연설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시장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면서 글로벌 증시는 하루 만에 반등에 성공했지만 그의 저서만 놓고 봤을 때는 자본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감세 및 통화 정책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대선 출마를 앞두고 출사표 성격으로 내놓은 책인 ‘불구가 된 미국(원제 Crippled America·2015)’에서 “특수이익 집단과 부유층을 위해 만들어진 과세 체계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감세를 주장하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 헤지펀드와 투기성 합자법인들은 최고 수준의 소득을 올릴 때 그만한 수준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썼다. 과세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면서도 여전히 뉴욕 월가에 대한 반감이 조세 정책에서도 녹아 있는 것이다.


통화 정책 방향은 더욱 갈지자다. 자신을 ‘저금리 인간(low-interest person)’으로 부르면서도 정작 연설에서 “(저금리 기조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느려 터졌다”며 중앙은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당장 교체하겠다던 재닛 옐런 연준 의장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발언인지 정말 금리를 빠르게 올리라는 의미인지 시장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가 책에서 강조한 재정 확대와 감세 정책은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져 통화 정책에서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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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로 익히 알려져 있는 미국 우선주의는 저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책에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만들 것”이라며 “이런 변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일부 비용은 사우디·한국·독일·일본에 넘겨야 한다”고 썼다. 그는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여러 산업을 파괴했고 우리 기업을 염탐했고 우리 기술을 훔쳤으며 화폐 가치를 낮춰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며 주요2개국(G2) 환율전쟁의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전략부장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급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하루 만에 제모습을 찾았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시장의 바람을 투영하기보다는 트럼프가 실제로 했던 말들이 현실에 적용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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