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과 값싼 의약품 사용을 권장하는 ‘오바마케어’의 폐지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복제약 중심인 우리나라 바이오·제약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오리지널약의 판권을 쥐고 있는 자국 제약사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권을 강화하고 복제약의 미 시장 진출을 까다롭게 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의약품 가격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을 들어 국내 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이에 따른 과실은 미국 제약사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정세영 경희대 약대 교수(전 대한약학회장)는 10일 “트럼프 당선인은 보호무역주의자인데다 지적재산권 부문에서 미국 중심의 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에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이 강한 한국 제약산업에 불리하다”며 “무엇보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대응하기 위해 특허권을 강하게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바이오시밀러 규제 완화에 보수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12년에야 바이오시밀러 제품과 관련된 가이드라인 초안을 내놓았는데 2005년 관련 규정을 제정한 유럽에 비해 상당히 늦다. 이마저도 오바마 정부 들어 속도를 낸 결과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은 FDA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약 위주의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복제약에 대한 FDA의 승인지연이나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식의 견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관련 비용 증가가 우려된다.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의약품 시장규모는 1조1,492억달러에 달한다.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에피스 같은 국내 업체가 노리고 있는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경우 미국 시장 비중이 무려 47%다. 송용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은 다국적 제약사의 영향력이 크고 바이오시밀러도 오바마 정부 때나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며 “신약산업 보호를 위해 시밀러에 대한 승인지연 같은 견제 가능성이 있는데 경쟁자보다 앞서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시밀러 분야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승인을 앞둔 제품이 문제다. 앞서 FDA의 승인을 받은 셀트리온의 ‘램시마’는 이달부터 미국 내 판매가 되지만 ‘트룩시마’와 ‘허쥬마’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아직 FDA 승인을 받은 게 없다. 국내 중소 업체의 경우 미국 진출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에서는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는 분위기다. 미국 특허심판원은 7일(현지시간) 자가면역질환치료제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코히러스사가 특허무효를 겨냥해 제기한 당사자심판(IPR) 청구를 기각했다. 당초 휴미라의 기본적인 특허 만료시한이 다음달 완료되기로 예정됐는데도 이번 판결로 휴미라 복제약 출시는 1~3년가량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현재 미 연방검찰은 미국 내 제네릭 업체에 대해 가격담합 혐의를 두고 조사 중이다. 업계에서는 제네릭 업체에 대한 견제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고 있다.
물론 미국도 국가재정과 국민건강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는 복제약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최소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당선시 기대했던 오바마케어 유지에 따른 복제약 업계의 반사이익은 사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신재훈 이베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오바마케어에 따라 복제약의 역할이 커지면서 생기는 플러스 알파 요인은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제 ‘트럼프케어’의 수혜자는 미 제약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금융투자는 “트럼프 당선인은 제약사 간 합병에 대해 클린턴 대비 비교적 관대하고 약가 정책에 대한 관심도 적어 애브비나 머크·암젠·길리어드 등 미 대형 제약사들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도 복제약보다는 고품질의 신약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바이오업계의 관계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쉽진 않겠지만 결국은 신약 개발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필·양철민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