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12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직접 전해 들은 민심은 분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시민들은 격분하거나 과격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했다. 냉정하게 현 시국을 분석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집회에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주에서 새벽에 서울로 올라온 공무원 김모씨(34)는 “이런 나라에서 녹을 먹는 공무원이라는 게 참으로 서글프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러려고 공무원 준비를 2년이나 했나 자괴감이 든다”며 “임신한 아내는 건강상의 이유로 오지 못했지만 나는 부끄러운 아빠로 남고 싶지 않아서 서울에 오게 됐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 그는 “보복성 인사가 있을까봐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걸 이해해달라”고 기자에게 두 번이나 양해를 구하면서 “더 적극적이지 못해 함께 참여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옆에서 듣던 한 시민은 김씨에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 여기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꼭 해내자”고 격려하기도 했다.
대전에서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올라왔다는 김윤창씨(56)는 “5천만 국민을 위해 나라를 보살피고 헤아리라고 대통령을 뽑았는데 최순실을 보살피고 헤아리는 사적인 정치를 펼쳤다”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집에서 아침 7시 반에 나오고 버스가 출발한 건 9시쯤이다. (참여한 단체 주도로)대전에서 출발한 전세버스가 총 7대 정도인데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더라”며 “국민이 원하는 바가 이뤄질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5시15분께 행진 시작 선언과 함께 집회참가자들은 청와대 본관과 대통령 관저로부터 약1㎞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지점까지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경복궁역이 있는 내자동 사거리로 집결하는 행진은 사상 처음이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시민 행렬의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주최 측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고, 오후 1시 반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당초 계획대로 행진이 가능해진 것이다.
시민들의 뜨거운 행렬은 12일 밤 늦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오후 5시 현재 집회 참가자 규모가 55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오후 4시35분 15만9,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공식 통계를 발표한 이후 집계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집회가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어 참가 인원 추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3차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기간 중 최다 인원이 모인 것으로 알려진 6월10일의 70만명(당시 주최측 추산)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