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하야를 초래한 워터게이트와 닮았다. 대통령이 범죄행위의 주범·몸통으로 의심받고 의혹을 덮기 위해 자신의 수족 같은 보좌관들부터 쳐낸 것도 비슷하다.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의 집요한 추궁에 다급해진 닉슨이 당시 법무장관에게 특검 해임을 지시하자 법무장관이 이에 불복해 사의를 표했고 차관도 같은 이유로 옷을 벗어 결국 법무부 서열 3위의 국장을 시켜 특검을 그만두게 했다. 지난 1973년 10월20일 토요일 벌어진 이른바 ‘토요일 밤의 학살’이 지금 한국에서 회자되는 것은 향후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에서 추천한 특검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임명하지 않거나 특검 조사를 거부할 개연성이 크다는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는 15개월 시한부 수성전을 준비하고 있다. 버티기 전략이다. 물론 워터게이트 때는 이것이 잘 통하지 않았다. 해를 넘겨 버티던 닉슨도 미 연방 대법원의 압박과 의회 탄핵의 협공에 결국 1974년 8월 사임했는데 물러날 때 갤럽 조사 결과 닉슨 지지율은 24%에 달했고 재임 임기를 2년 반이나 남겨뒀었다.
‘세월이 약’인 것처럼 시간은 청와대 편이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이 포진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에다 북한의 도발, 촛불집회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누적, 야권 분열 등 수많은 변수가 있다. 청와대가 짜놓았을 법한 시나리오대로 최장 180일의 헌재 심판 기간에 우연히 북핵 위협이 도지거나 촛불집회의 평화 기조가 단 한 번이라도 어긋날 때 대통령 추종자들과 지역색에 편승한 구태 세력이 재결집하고 탄핵 부당성 주장이 불거져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은 뻔하다. 워터게이트 때 토요일 밤의 학살 사건 직후에도 갤럽의 설문에 응답한 미국인의 51%는 닉슨 탄핵을 반대했다.
필연은 우연을 가장하고 나타난다. 지난 미국 대선을 4개월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인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 예언이 적중한 것은 우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분노한 백인 남성의 저항과 민주당 내 라이벌인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 등 무어 감독이 자신의 블로그에 적시한 이유들은 클린턴의 패배로 가는 필연의 원인이었다. 국민이 등을 돌린 대통령, 중대한 실정법을 위반한 피의자가 대통령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은 틀림없는 민주주의 퇴보다. 이를 목도하고도 이번에는 잘 뽑으면 된다고 자위하며 행사하는 투표권은 또 다른 중우(衆愚)정치로 가는 필연이 될 수 있다. 내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든지 전진하든지 어느 쪽이든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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