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고로 오늘의 주제는 좀비물입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같은 고전은 빼고, 2000년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다소 무서운 사진 주의! 아래는 예시입니다.
1. 잔인함 주의, 좀비에 충실한 좀비물
좀비 애호가(어감이 변태스러워…!)들이 좀비물에 기대하는 게 뭘까요? 쏟아져나오는 좀비와 전지구적인 혼돈과 낭자하는 선혈(창의적이어야 함),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정통 좀비물을 꼽으라면 저는 일단 스페인 영화 ‘REC(2007년작)’를 고르겠습니다. 러닝타임 78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고 언제 끝나나 시계도 들여다봤다니까요. 좀비 출몰로 폐쇄된 아파트에서 TV 리포터, 카메라 기자와 아파트 거주자들 등이 물고 물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닥 크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어느 순간 좀비가 나타날지 몰라 바짝 긴장했던 기억이 나네요.
2000년대 들어 좀비 붐을 주도했던 ‘새벽의 저주(2004년)’, ‘28일 후(2002년)’, ‘28주 후(2007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워낙 많이들 보셨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않겠습니다.
다만 ‘28주 후’는 저는 개인적으로 좀 과소평가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나름 호화로운 출연진(어벤저스의 호크아이님이신 제레미 레너, 아직 조연급이지만 은근 다작인 로즈 번, 매력적인 눈빛의 이모겐 푸츠 등)에 스릴감과 피튀김 지수(…)도 상당합니다.
특히 지하대피소 장면과 헬기 몰살 장면은 좀비영화계에 남을 명장면들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버린 아내에 대한 그 양면적인 감정에서 파생되는 결말이 너무나 인상깊었습니다. ‘28개월 후’는 이젠 제작 계획이란 소문마저 안 들려오는 듯한데 제발 어느 용자가 나서주셔서 28 스피릿을 잘 계승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좀비물 피튀김 지수의 최고봉은 영국 좀비 드라마 ‘데드셋(2008년)’입니다. 본 지 8, 9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몇몇 고어한 장면이 여전히 기억에 남네요. 이런 게 어떻게 TV로 방영되나 싶을 정도로요.
데드셋은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폐쇄된 세트장에서 시작됩니다. 바깥 소식을 모르고 사는 출연자들(성격 더러운 분들 다수)은 결국 바깥 세계가 궁금해 문을 열고, 당연히 좀비가 쳐들어오겠죠? 쓰다 보니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2. 좀비는 거들뿐, 좀비 은유물
좀비가 등장하되 살 떨어지고 뼈 부러지는 것보단 인간에 더 초점을 맞추는 좀비물들이 있습니다. 사실 좀비물 특성상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 이런 특징이 있긴 하지만요.
예를 들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아재와 애비게일 브레슬린이 부녀로 출연하는 ‘매기(2015년)’에서 좀비는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좀비로 변해가는 딸과 이를 지켜보는 아빠의 감정선에 집중하죠. 일반적인 ‘좀비 상식’과 달리 좀비로 변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면? 하는 상상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빵 터지는 감동, 슬픔 같은 건 없지만 슈워제네거 아재의 얼굴은 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근육질 형님이었던 그도 나이가 들면서 슬픔이 어울리는 얼굴이 되어서, 짠한 느낌이 듭니다.
비슷한 좀비물로는 영국의 드라마 ‘인 더 플레쉬(2014)’가 있습니다. 좀비였다가 치료를 받고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보통 인간’들 속에서 차별과 미묘한 거리감 때문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게다가 좀비였을 때 사람을 죽인 기억도 남아있구요. ‘매기’보다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더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시즌 1이 3부작, 시즌2가 6부작입니다.
미국 영화 ‘좀비랜드(2009년)’는 좀 더 가볍고 경쾌합니다. 한 너드의 성장기라고 할까요. 믿고 보는 배우 우디 해럴슨과 너드 캐릭터 싱크로율 100%인 제시 아이젠버그, 그리고 엠마 스톤과 애비게일 브레슬린이 출연합니다.
그러고보니 애비게일 브레슬린은 길지 않은 배우생활 동안 좀비물을 두 편이나 찍었네요.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꼬맹이였던 모습이 선한데, 최근엔 자꾸 아무 영화(…)나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3. 창자인가 밧줄인가, 코믹 좀비물
그래요. 저도 바로 위의 문장을 쓰면서 살짝 얼굴을 찌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 좀비영화인 ‘데드 스노우(2009년)’는 제가 정말 강추하는 코믹 좀비물입니다. 눈덮인 산 속에 묻혀 있는 나치들이 좀비로 되살아나서 마침 근처 산장에 놀러 온 의대생들과 맞붙는 이야기인데요.
긴 말이 필요 없고 그냥 보시길 권합니다. 신나게도 1편이 인기가 많았는지 2편까지도 만들어졌고, 2편도 빵터집니다.
그리고 영국 좀비영화인 ‘카크니즈 vs 좀비스 (Cockneys vs Zombies, 2012년)’. ‘노인과 바다’도 아닌 ‘노인과 좀비’라고 할까요.
무려 노인들이 좀비들과 싸우는데 초반에는 귀도 어둡고 팔다리도 둔하여 느릿느릿 다가오는 좀비들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지만 점점 과격해지고 결국에는 막나갑니다. 가끔 보면 영국인들의 유머감각은 확실히 미국보다 좀 뒤틀리고 비뚤어져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4. 기타 좀비물
21세기 좀비물의 역사에서 바이블(?!) 같은 책이 한 권 있는데요. 바로 ‘월드워Z(2013년)’의 원작 소설인 ‘세계대전Z(2006년)’입니다. 저자 맥스 브룩스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좀비 사태에 직면한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일들, 예를 들어 좀비가 바다에 빠지면, 좀비가 북극에 가면, 좀비 사태 속 국제정치와 외교의 향방은 등등, 뭐 이런 것들을 그야말로 집대성!!하였는데!!!!
정작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월드워Z는 좀비탑 쌓기를 시전하고 끝나버리는 허무한 영화였습니다. 이거슨 좀비 영화라기보단 브래드 피트 주연의 히어로물….
세계대전Z를 감명깊게 읽은 저로서는 실망이 컸었죠. 좀비 영화의 베토벤교향곡 급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감독, 조지 로메로 역시 ‘브래드 피트가 좀비 장르를 죽였다’고 맹비난했다고도 합니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일단 전 다 보긴 했지만 1편 빼고는 좀 재미가 없긴 했죠. 1편은 최첨단 연구시설에서의 좀비 살육전이 괜찮았지만, 불쌍한 앨리스는 죽고 또 죽고…ㅠㅠ이젠 그만 죽길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산행(2016년)’과 ‘워킹데드’. 부산행은 열차 좀비물이라는 선구적인 아이디어와 마블리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훌륭했지만 마지막이 너무 전형적인 한국영화여서 아쉬웠고, 워킹데드는 그냥 좀비가 거들뿐인 치정휴먼드라마 같은 느낌이라 시즌1에서 접었습니다. 좀비물인 주제에 질질 짜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훌륭한 좀비물이 있다면 추천을 부탁드리옵니다. 미리 감사드리며, 다음 번 취미생활로 만나요~!
*<서울경제 썸>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똑똑한 2030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디지털 콘텐츠 기획 ‘2030 W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2030 W 프로젝트’는 여성 창업인 릴레이 인터뷰 ‘#그녀의_창업을_응원해’를 비롯해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각종 에피소드를 다룬 서경씨의 직장일기 ‘#오늘도_출근’, 여성 직장인을 위한 맞춤형 재테크 코너 ‘서경씨의 #샤넬보단_재테크’, 최신 라이프스타일 정보는 물론 똑똑한 쇼핑팁을 알려주는 ‘서경씨의 #썸타는_쇼핑’, 웹툰·레고 등 이색 취미를 갖고 있는 기자의 생생한 체험기 ‘서경씨의 #소소한_취미생활’, 30대 초반 여기자들의 은밀한 연애담을 다룬 ‘서경씨의 #시크릿_연애일기’ 등을 요일 별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서울경제의 애칭인 ‘서경’씨를 통해 2030 여성 독자분들께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서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여성들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보탬이 될 콘텐츠 생산을 위해 더욱 깊이, 더욱 뜨겁게 고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