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에 구로 인력시장에 나가본 적이 있습니다. 다섯 시 반쯤 되니 몇몇 사람들은 일자리가 정해져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했습니다. 낮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하다 집에 가면 오밤중이겠죠.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은 속상한 마음에 소주 한 잔 하러 발길을 돌리더군요. 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서민금융의 도움이 절실할 텐데도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팍팍해서 관련 정보를 모른 채 살아가겠구나 싶었습니다. 서민금융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취임 3개월차에 들어선 김윤영(60·사진) 서민금융진흥원 원장은 지난 2일 서민금융진흥원 본사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홍보전략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올 9월 말 출범 이후 지하철 스크린도어, TV·라디오 광고 등 각종 매체를 통한 홍보에 나섰지만 여전히 서민금융진흥원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구전으로 정보를 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원장이 효율적인 홍보방안을 고민하는 이유다. 무작정 많이 광고를 내보내면 될 것 같지만 막상 해보니 많은 서민들이 일상 중에 매체를 통해 광고를 접할 여유가 없었던 것. 김 원장은 서민과 접점을 넓힐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김 원장은 또 서민금융진흥원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내년 초 서울 종로구청과 협업을 통해 서민금융진흥원 직원들이 구청 복지센터 등에 주기적으로 나가 서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과거 서민금융진흥원의 전신 중 한 곳인 미소금융재단에서 지자체가 추천한 상인회와 접촉해 무이자 대출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특정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원장은 “자꾸 만나서 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형 금융”이라고 설명했다.
서민금융진흥원은 금융위원회의 주도로 출범한 서민금융 종합 컨트롤타워다. 미소금융·햇살론·바꿔드림론·새희망홀씨 등 4대 서민 상품을 한데 모아 관리한다. 또 전국 33개 통합지원센터에서 신용회복위원회·국민행복기금과 함께 소액대출, 취업 지원, 자활 상담 등 종합적인 서민금융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서민금융진흥원 출범 목적에 대해 “공급자 중심의 서민금융 지원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여러 기관을 통해 서민금융 상품이 여럿 출시됐지만 대부분 지원 대상과 규모가 겹쳐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취를 감췄던 서민금융 상품들이 2008년 이후 폭발적으로 출시됐고 연간 지원 금액이 5조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공급자 편의에 맞춰 출시된 상품들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김 원장은 “그간 서민금융 정책이 양적 지원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라며 “입체적인 분석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 처한 서민들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연 소득 3,000만원 이하’라는 획일적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통과시키거나 탈락시키기보다는 정성평가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겠다”며 “다시 말해 단순 서류 심사가 아니라 심층 상담을 통해서 자활 의지가 있는 사람을 찾아 재기를 돕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환 의지가 있다면 우선 소액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후 문제 없이 상환이 된다면 금액 한도를 늘려주는 등 재기 과정을 장기적으로 돕겠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이뤄지는 금융 상담은 한 시간 이상 소요될 때가 많다. 정성평가를 위해 직원들이 상담자의 가족관계, 생활 패턴, 재활 의지 등의 정보를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관계형 금융의 안착을 위해 상담을 통해 수집되는 비계량적 정보를 계속해서 모으고 있다. 그간 미소금융·햇살론·국민행복기금·신용회복위원회에 쌓인 자료까지 더해 신상품 개발, 신용평가시스템(CSS) 개발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다만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며 “일단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할지에 대한 틀을 짜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 지원 외 비금융 지원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통합지원센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화상전화를 통해 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창업·취업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에서도 그간 취업 관련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진행해왔지만 더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는 “최근 금융위·고용복지플러스센터와 얘기를 하고 있고 내년부터 시범적으로 몇 군데에서 화상 지원 시스템을 운영한 뒤 더 늘려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소와 인력이 더 요구될 수 있기에 통합지원센터 수를 늘리고 직원들을 추가로 채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김 원장은 취임 이후 선진국의 서민금융제도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은 간접 지원 방식인데 지역 은행이나 조합 등에서 프로그램을 짜 지원을 하면 기금에서 재정 지원을 해주는 식이다. 미국처럼 땅이 넓은 곳에서는 하나의 기관이 지역 곳곳에 종합적인 지원을 해주기 어려운 만큼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단체에 권한을 주되 재정적 지원을 뒷받침해준다. 그는 “프랑스·미국 등 여러 선진국 사례를 공부하고 있지만 사실 문화와 환경이 너무 달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계속해서 진흥원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제도들을 연구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이스(NICE)신용평가 발표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신용등급 6~10등급인 서민금융 지원 대상자가 800만명에 이른다. 이 중 약 140만명은 제도권 대출이 아닌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각지대에 놓인 140만명 중에서도 서민금융진흥원 등의 기관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절반도 안 될 것으로 김 원장은 추정했다. 김 원장은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갔다가 마음을 달리 먹고 진흥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봐왔다”며 “상식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진흥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담=정영현 금융부 차장 yhchung@sedaily.com
정리=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