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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여자의 비밀’ 최대 수혜자 이선구, “제 배우 점수는 100점 만점에 20점”

2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른 KBS 2TV ‘여자의 비밀’(극본 송정림, 연출 이강현) 최대 수혜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선구였다.


“최대의 수혜자요? 그렇게 봐 주시면 감사하죠.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을 맡았고, 소속사(bob스타컴퍼니)도 생겼어요. 무엇보다 ‘배우’라는 직함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달 수 있게 된 점이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이선구가 “지금까지 혼자 겨우 기어 다녔다면, ‘여자의 비밀’이란 작품으로 배우로서 꼿꼿이 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제공=BOB스타 컴퍼니이선구가 “지금까지 혼자 겨우 기어 다녔다면, ‘여자의 비밀’이란 작품으로 배우로서 꼿꼿이 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제공=BOB스타 컴퍼니


이선구는 이번 드라마 ‘여자의 비밀’에서 악녀 채서린(김윤서 분)의 신분상승을 돕는 조력자이자 깊은 연정을 숨긴 채 그녀를 지키는 수행원 오동수 역을 맡아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누군가는 그를 한 여름에도 터틀넥을 입는 올블랙 핫맨, 혹은 짠내나는 사랑꾼으로 기억했다. 무엇보다 그를 빛나게 한 건 시청자들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악역을 선보였다는 점. 그만큼 배우가 캐릭터에 설득력을 한올 한올 입혔다는 방증.

더욱이 상대 여배우와 손 한번 잡는 멜로신도 없고, 진한 키스신 보다는 자비 없는 싸대기를 맞는 장면이 더 많았으나 그 누구도 오동식의 사랑꾼 면모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처음에는 동수를 보고 ‘무섭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점점 ‘짠하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초반 주변에서 ”안 무섭다. 깡패처럼 좀 더 무섭게 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저 악하기만 한 깡패는 싫었어요. 관객들도 궁금해하지 않는 캐릭터로 보이긴 싫었거든요.”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타당성을 부여한 이선구는 ‘동수 이 친구가 서린이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이런 행동을 하게 될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무섭게만 한다면, 동수의 마음이 과연 전달될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린이를 쳐다 보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보고 싶었어요. 지문에는 그냥 ‘바라본다’라고 표시 돼 있었지만, 전 ‘서린아. 악행을 그만 좀 하자... 정말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마음을 담아 바라봤어요. 나름의 서브 텍스트를 넣었던 거죠.”

/사진제공=BOB스타 컴퍼니/사진제공=BOB스타 컴퍼니


그의 애정 담긴 피나는 노력은 시청자 뿐 아니라 송정림 작가의 마음도 움직였다.

“작가님께서도 제가 해석한 오동수를 좋게 봐주셨는지, 이전의 동수는 잊어도 될 것 같다. 지금 하는대로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 해주시기도 했어요. 제가 소화한 인물의 연기에 이유가 생기니 배우 스스로 훨씬 더 좋아지는 건 당연했죠.”

이선구는 ‘땡큐맨’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매사에 감사하는 성격이었다. “작가님이 10부 앞질러 대본도 미리 주셨어요. 대본이 빨리 나오니 배우가 생각하고 연습할 시간이 충분했으니까요. 신인에게는 더 없이 좋았던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더 종방연까지 매끄럽게 왔던 것 같아요.”

대전 사나이로 20대 후반 뒤늦게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이선구는 SBS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 영화 ‘창수’로 첫 데뷔를 했다. 체육학을 전공한 그는 서른이 되기 전 “너 하고 싶은 일을 해”라는 사촌형의 말 한마디에 진로를 바꾸게 된 케이스다.

“그 전 까지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내성적이기도 하구요. 남 앞에서 뭔가를 한다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배우를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친구들이 놀라기도 해요.”

딱히 뭔가를 하고 싶지 않던 청년은 안정적인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던 중 ‘연기’에 대한 큰 꿈을 품게 된다. 연기에 대한 도전과 준비는 이전의 소극적이었던 인생 결정과는 달랐다.


“2년 정도 연기학원을 다녔어요. 그러던 중 확신이 드는 순간이 왔어요. 자신감도 들었어요. 제가 타고난 외모를 지닌 원빈씨 같은 배우도 아니고, 미친 연기력을 타고 난 것도 아니지만, ‘후회를 남기지 말자’ 그런 마음으로 잘 해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이 전과는 다른 기쁨의 순간이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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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이선구의 열렬한 팬은 어머니였다. ‘여자의 비밀’ 오디션에 합격하고 가장 기뻐했던 이 역시 어머니다. 어머니는 매번 아들의 방송을 챙겨보는 것은 물론, 아들 관련 기사 하나하나를 스크랩 한다고 했다.

“제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 들었을 때부터 매일 우셨어요. ‘축하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잘하고 있다.’며 격려해주셨어요. 마음 한편엔 미안한 마음이 커서 눈물을 보이셨나봐요.

어머니는 SNS는 물론 인터넷에서 제 기사를 다 찾아보세요. 저 보다 더 빨리 찾아보시는 편이죠. 그럴 때마다 매번 ‘도움을 못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부모님 마음이 그렇나봐요. 전 어떤 도움 보다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게 정말 좋아요.”

/사진=kbs/사진=kbs


이선구의 매력은 슬픈 눈망울에 언뜻 언뜻 비치는 따듯한 눈빛이다. 3년 째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에 재능기부를 하며 ‘국민 지킴이’로 참여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성격은 다정다감한 편이다. 캘리그라피에도 일가견이 있어 지인들에게 축가 혹은 새해 메시지를 직접 써주는가 하면, 손쉬운 문자 보다는 직접 손으로 쓴 메모를 선호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특별하고 대단한 배우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수수한 사람’이라고 각인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제 안엔 뭐든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통해 나가는 것 또한 연기이니까요. 저한테 집중하고. 저를 관찰하는 것도 연기 연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배우’란 직업에 대한 자긍심 있지만, 배우라는 타이틀이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짜 열려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어요.”

이선구는 ‘이순재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제가 평생할 거란 확신이 드는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오래 간다고 꼭 좋은 배우는 아닐 수 있어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려고 해도 직업란에 공무원, 서비스직은 있어도 ‘배우’는 써져 있지도 않아요. 그래서 ‘기타’를 선택해야 하지만 전 수 많은 직종 중 ‘배우’를 선택했어요.

제 선택을 존중해요. 그렇게 열심히 해서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남들 하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꼿꼿이 서서 나아가고 싶어요.“

8년차에 접어든 그는 스스로의 배우 점수를 “100점 만점에 20점이다”고 답했다. 야박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더 좋아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아직 보여드린 게 없기 때문에 저한테 점수를 준다한들 20점 밖에 안 돼요. 나머지 80프로는 아직 보여드리지 못했기에 더 지켜봐주셨으면 해요.”

흔히 ‘배우의 나이는 10년이 한 살’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이선구는 “아직 10년 경력도 안 되는 저는 배우로서 한 살도 되지 않았어요. 배우는 기다림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들었어요. 저 역시 많이 경험하고 기다리며 성장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혼자 겨우 기어 다녔다면, ‘여자의 비밀’이란 작품으로 배우로서 꼿꼿이 섰던 것 같아요. 이제 한 걸음 한걸음 걸을 수 있게 된 거죠.”

‘이선구’(宣九)란 이름 석자에서도 그의 특별한 매력은 빛났다.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아홉 번 베풀어’란 뜻인데, 사실 9란 숫자가 완전하지 않은 숫자잖아요. 결국 ‘아홉 번이 아닌 계속 베풀어’란 뜻이 담겨있어요. 이름 자체 어감은 촌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유니크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가고 싶어요.(웃음”

스스로 갓난아이에서 이제 ‘배우’란 직함을 달고 일어섰다고 말한 이선구의 두돌, 그리고 배우 인생 20년이 내심 궁금해졌다. 그가 걷고, 뛰고, 달리고, 점프하는 2막 인생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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