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박근혜가 미워도 창조경제는 버리지 말자"

'최순실 사태' 직격탄 맞은 창조경제 운명은 과연?<br>벤처업계 "정책 취지는 옳다…살려나가야" 목소리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창조경제 구상 과정에서부터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여럿 포착됐기 때문이다.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 사업으로 키워온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출범 2년여 만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사실상 이 사업의 순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생존의 갈림길에 놓인 창조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지난 6월 대전시 유성구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입주 기업인들 및 센터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지난 6월 대전시 유성구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입주 기업인들 및 센터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러려고 창업을 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최근 기자와 통화한 지방의 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스타트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허탈한 기분을 숨기기 위해 대통령의 담화문 일부를 패러디하며 짐짓 웃음을 유발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현 상황에 대한 불안감에 가득 찬 쓴 웃음일 뿐이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창조경제 정책 기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불법 자금 지원과 유용, 횡령 등 나올 수 있는 모든 탈법적 행태가 집합된 정책이라는 지적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전국 주요 도시에 설치된 17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는 당장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벌써부터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는 예산 삭감, 원점에서의 재검토 등 강도 높은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사실상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권에서는 이미 혁신센터와 관련된 예산 삭감을 공언했다. 혁신센터 운영비는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50%), 각 지자체(30%), 센터 설립 지원 기업(20%)이 함께 부담한다. 올해 전국 17개 센터의 총 운영비는 731억 원 수준이다. 이 중 미래부가 318억 원, 지자체가 259억 원, 대기업이 161억 원을 부담했다. 운영비의 80% 이상을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지는 구조상 예산의 일부 혹은 전액 삭감은 센터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이미 내년도 서울 혁신센터 운영비 예산 22억 원을 전액 삭감키로 결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검찰이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 전반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도 센터 운영에 대한 국비 예산이 통과될지 불투명하다”는 입장을 들며 예산 삭감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사실상 국정 동력이 소멸된 상황에서 창조경제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일부 전문가들은 창조경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의미와 실체가 없는, 그야말로 허울뿐인 정책에 불과하다는 이유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신설된 미래부의 첫 과제 역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 아닌 창조경제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미래부 관계자 A씨는 말한다. “사실 개념 정립부터 모호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지식경제부’라는 부처를 신설해 ‘지식경제’, ‘기술혁신’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정부 당시에도 ‘IT 육성’이라는 기조 하에 벤처 창업 활성화 방안을 꾸준히 내놓았죠. 개념적으로 현 정부의 창조경제는 앞선 정부의 관련 정책과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무언가 다른 점을 만들어내야 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국민’이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창조경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A 씨의 말처럼 미래부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첫 사업으로 ‘국민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한다’는 취지의 ‘창조경제타운’이라는 홈페이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미래가 아닌 단기적 성과에 치중해온 정책 방향 역시 논란의 대상이었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경제 역시 남들보다 한발 앞서 기술 트렌드를 읽어내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혁신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이 수반돼야 했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는 ‘창조’가 없었다. 오히려 해외에서 크게 이슈가 된 기술 트렌드를 뒤따라 가기 바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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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기반 스타트업 대표 B씨는 말한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기억하시죠? 당시 대국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사실 국내 과학계 전문가들은 꽤 오래전부터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꾸준히 말해왔어요. 하지만 정부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만난 주무부처 관계자는 ‘일단 인공지능 기술을 들고 직접 찾아오라. 보고 판단하겠다’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죠. 이는 오로지 성과와 사업성만을 기준으로 시장과 기술을 평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파고 대국 이후 정부에서 갑자기 ‘글로벌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인공지능 기술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관련 지원 및 육성 방안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과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앞선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을 겁니다.”

특히 창조경제의 메카로 불려온 혁신센터의 입주 기업들은 이 같은 논란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스타트업은 남들이 가지 않은, 그리고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블루오션을 뚫기 위해 밤낮을 새워가며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한다. 이는 창의적 사고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자가 접한 혁신센터 입주 기업 관계자들은 ‘창의성’ 대신 ‘성과’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지방 혁신센터에 입주한 경험이 있는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플랫폼 개발 기업 대표 C씨는 말한다. “혁신센터 입주 예정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센터 관계자가 나와 다양한 보육 및 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하더군요. 저희는 당연히 이 같은 프로그램에 맞춰 사업 로드맵을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어요. 입주 후 첫 번째 사업 점검 평가에서 들은 말이 “그래서 언제 개발이 완료되는 거죠?”였습니다. 입주한 지 불과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기에 당황스럽기만 했죠. 이후에도 성과에 대한 채근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심지어 저희와 같은 상황에 놓였던 몇몇 기업들은 이러한 압박에 지쳐 혁신센터를 나가기도 했습니다.”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정책기조와 성과만을 강요하는 혁신센터의 잘못된 운영은 창조경제라는 꽃을 스스로 꺾어버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설사 최순실 국정농단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창조경제는 결국 ‘5년 단발성 이벤트’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5년간 부르짖은 ‘녹색성장’이라는 구호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의 혼란이 이어진다면 창조경제 역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미 현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창조경제 역시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업계, 특히 벤처업계에서는 창조경제의 기조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계산을 빼고 창업 생태계 활성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살려나간다면 창조경제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벤처업계 1세대인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말한다. “전반적으로 현 정부의 창조경제 전략은 적어도 스타트업 생태계 속에서는 꽤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수십 년 동안 이 시장에 몸담아 왔지만 창업에 대한 열기가 이처럼 뜨거웠던 때를 본 적이 없거든요. 물론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제도의 정비 등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창조경제의 방향성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창조경제가 지속 가능한 전략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창업과 시장 안착, 그리고 성장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센서 개발 스타트업 비쥬터치의 이희승 대표는 “다음 정권에서 창조경제 전략이 혹여나 폐기된다면 최근 1~2년 사이 창업한 저희 같은 스타트업들은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며 “창조경제가 작금의 사태에 희생양이 되지 않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본연의 기조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김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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