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 관련 재난영화인 ‘판도라’는 정부의 무능과 안일한 대처로 발생하는 국가비상사태를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나라를 뒤흔든 원전 사고는 현실의 세월호 참사를, 국무총리와 영부인 등에게 의사결정을 의존하는 대통령(김명민 분)의 모습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각각 연상케 한다는 관람평이 다수다.
정부에 비판적이면서 사회적으로 매우 예민한 원전 사고 관련 내용을 담은 탓에 배급사와 제작진은 영화 완성 단계에서도 개봉일조차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영화 판도라는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브랜드인 ‘창조경제’의 수혜를 제대로 누린 작품이기도 하다.
금융위원회가 12일 낸 크라우드펀딩(온라인 소액 지분 투자) 통계를 보면 판도라는 지난 11월 법정한도액인 7억원을 모집했다. 이는 지금까지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8개 영화 작품 중 가장 큰 자금조달 규모다.
크라우드펀딩은 올 1월부터 시행된 것으로 소액 투자자도 연 500만원 한도로 온라인을 통해 중소·벤처기업과 문화 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박근혜 정부가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창조경제를 정책 기조로 삼으면서 크라우드펀딩은 자연스럽게 금융위의 역점 사업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크라우드펀딩 시행 전후로 수차례 현장간담회를 개최해 직접 건의사항을 청취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관련 정책을 챙겼다. 금융위는 크라우드펀딩 활성화를 위한 후속대책을 지난달 6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무능과 실책을 꼬집는 내용의 영화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모집에 성공하고 흥행에 성공(11일 기준 145만9,276명)한 것을 두고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판도라는 대한민국의 현실 문제를 영화에 투영해 대중심리를 자극한 점이 최대 흥행 요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해 “투자자의 이해가 비교적 쉬운 영화 산업에서 크라우드펀딩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이 금융개혁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질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