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일본 도쿄대에는 ‘90년 만의 만남’이라며 반려견 한 마리가 주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색적인 동상 하나가 세워졌다. 동상의 주인공은 1920년대 농학부 교수를 지냈던 우에노 히데사부로 박사와 그의 반려견 하치였다. 하치는 우에노 박사가 생전에 애지중지하면서 자식처럼 키웠던 ‘아키타 견’이었다. 하치는 우에노 박사가 살아 있을 때 매일 시부야 역으로 나가 귀가하는 주인을 배웅하고 마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노 박사가 강의 도중 쓰러져 사망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하치는 10년간이나 매일 시부야 역에서 주인을 기다렸다고 한다. 충직한 반려견을 기리기 위해 시부야 역에는 하치의 동상까지 만들어졌고 지금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결같이 주인을 기다렸던 하치의 이야기는 이후 소설이나 할리우드 영화로 탄생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 ‘아키타 견’은 북부 산악지대가 원산지인 대형 스피츠 종으로 네모진 몸뚱이에 날렵한 얼굴을 갖고 있다. 원래 투견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멧돼지나 흑곰 사냥에도 뛰어난 소질을 가졌다. 일설에는 한국의 진돗개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아키타 견은 1931년 일본 정부로부터 국보로 지정됐는데 헌신적이고 충직한 일본적 기질을 강조해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키타 견은 지금도 J리그 구단인 제프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로 활약할 정도로 일본인들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을 앞두고 아키타 견을 선물로 주려다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아키타 견은 2012년에도 푸틴에게 선물로 전달돼 막힌 외교협상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양국 간 영유권 분쟁에 휘말린 쿠릴 4개 섬 반환협상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아베로서는 머쓱해질 일이다.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정치·외교의 현실에서 대의를 지키는 아키타 견의 충직함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