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8개 은행이 12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라 좌초될 것으로 여겨졌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민간 은행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 탄핵으로 성과연봉제 도입 모멘텀이 약해질 것으로 우려한 금융 당국과 은행 경영진이 치밀하게 공동 대응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은행 경영진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 효과가 큰 성과연봉제 도입이 탄핵 정국에 묻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은행권 노동조합 측이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협상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실질적인 성과연봉제 도입까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금융권에 따르며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대형 4대 은행을 비롯해 SC제일·씨티·농협·수협 등 총 8개 은행이 이날 이사회 의결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민간 은행들은 그동안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조 측과 협상을 진행하려 했으나 진전되지 않자 금융 공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사회 의결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이날 오전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우리은행 측은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는 이날 이사회 의결을 통해 결정됐으나 도입 시기와 내용 등은 노조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들 역시 우리은행 측의 이 같은 입장과 동일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성과연봉제가 8개 은행 이사회를 통해 이날 전격적으로 의결된 것에 대해 금융 당국의 외압이 있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수의 은행이 같은 날 한꺼번에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를 의결한 것은 당국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이에 대해 성과연봉제 도입은 민간 은행들의 의지에 의한 선택일 뿐 당국이 지시할 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주 탄핵 정국에서 금융 당국이 무슨 지시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이날 민간은행들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서로 간의 교감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은행장들은 지난주부터 도입 시기 등과 관련해 막판 조율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1개 은행이 혼자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에는 부담이 큰 만큼 공동 대응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다만 실질적으로 은행권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기까지는 장벽이 크게 남아 있다. 이날 금융노조는 성명을 내놓고 “금융 당국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하도록 시중은행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이 같은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또한 “금융위원회로부터 12일 이사회 의결을 무조건 강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를 강행할 경우 관련 책임자들을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로 규정하고 응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이사회 결의에 앞서 지난 8월 14개 시중은행장들은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을 위해 전국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에서 탈퇴한 바 있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은행연합회에서 만든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금융노조가 이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거세게 반발해 산별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개별교섭을 위해 협의회를 탈퇴했다고 밝혔다,
한편 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들도 노조와의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다가 소송전에 휘말려 있다. 기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금융공기관 노조들은 성과연봉제 무효확인 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각 제기한 상태다. 성과연봉제가 민간 은행까지 강행될 경우 민간 은행과 노조 사이에서도 이 같은 소송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