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갔다가 우연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 10개를 얻은 수현(김윤석 분)이 이를 통해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30년 전의 수현(변요한 분)을 만나고, 30년 전 세상을 떠난 연인 연아(채서진 분)의 죽음을 막으려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독립영화와 연극무대를 오가며 주목받던 배우에서 tvN 드라마 ‘미생’의 ‘한석율’ 역을 통해 단숨에 충무로 유망주로 떠오른 변요한의 첫 번째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첫 상업영화에서 충무로 대선배인 김윤석의 30년 전 젊은 시절을 연기한 변요한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변요한에게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특별한 영화였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지 그의 첫 번째 상업영화 출연작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변요한은 군 복무를 하던 시절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가 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원작을 감명깊게 읽었고, 그 작품을 첫 상업영화 출연작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변요한에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역시 첫 상업영화부터 연극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대선배인 김윤석과 2인 1역으로 호흡을 맞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변요한의 30년 후에 서 있는 김윤석의 모습은 이제 배우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변요한에게 큰 가르침을 선사했다.
“영화에 김윤석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되시고, 선배님이 저를 추천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저도 객관적으로 김윤석 선배님하고 제가 닮았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인 사이니까요. 오히려 외모가 닮았다고 한다면 저도 무의식중에 그런 강박에 사로잡혀서 선배님 흉내만 내고 자유로움이 없어졌을지 몰라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선배님은 저한테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지만, 제 분석을 존중해주시고 편안하게 대해주셨어요.”
“연기를 하면서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 장면이 교차될 때마다 김윤석 선배님의 감정을 이해하고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렇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그런 노력들이 조금씩 쌓이다보니 어느 순간 스태프들이 저와 김윤석 선배님이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후반부에 촬영한 바닷가에서 함께 걷는 장면에서도 저는 특별히 선배님과 닮아보여야겠다는 의식 없이 편하게 걸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느새 뒷모습이 닮았더라고요.”
김윤석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영화에는 두 명의 ‘수현’이 서로 대립하는 순간도 여러차례 등장한다. 특히나 아직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과거의 ‘수현’이 현재의 ‘수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현재의 ‘수현’을 몰아세우는 장면은 변요한이라는 배우가 지닌 연기의 폭발력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수현’은 결국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인물이기도 해요. 그래서 디테일한 점에서 30년 후의 ‘수현’과 30년 전의 ‘수현’을 구별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젊은 ‘수현’이 30년 후의 ‘수현’에게 ”네 딸을 낳지 않겠다“라고 협박하는 모습도 30년 전의 ‘수현’은 딸의 소중함을 모르기에 툭 던질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사투리의 표현에서도 감독님과 상의해 일부러 현재의 ‘수현’과는 다른 말투로 3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그려내고자 했어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변요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김윤석과 3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2인 1역을 한다는 것 외에도 기욤 뮈소의 원작소설에서 이야기하는 ‘현재’의 소중함, 그리고 30년 전 과거의 선택에 대해 변요한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기를 펼쳐나갔다. 이런 변요한의 치열한 노력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다른 타임슬립 소재의 영화와 다르게 감성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는 연인들의 사랑도, 오랜 친구와의 우정도, 그리고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도 나오는데 이것들을 결국 다 합치면 궁극적으로는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어려워서 친구들에게 읽어봐달라는 부탁도 했었는데, 결국 본질은 ‘사랑’이었어요.”
아직도 관객들에게는 풋풋한 신인배우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변요한은 1986년 생으로 벌써 올해로 31세의 적지 않은 나이다. 변요한은 20대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연기를 배우고, 독립영화와 연극무대를 통해 활동하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을 해왔고 이제는 자신이 생각해온 ‘배우’에 대한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관객들 앞에 이야기할 시간이 됐다.
이제 배우로서 본격적인 전성기가 열리려는 이 시점에서 변요한은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아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20대 무명배우 시절의 모습이 지금의 자신에게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고민을 통해 변요한은 조금씩 진짜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영화 속 ‘수현’처럼 살아 면서 후회했던 순간은도 물론 너무나 많죠. 하지만 그런 후회의 순간들도 지금의 저에게는 다 ‘변요한’이라는 배우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언젠가 저라는 사람이 희소성이 없어질 수도 있고, 관객들에게 전혀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건 모든 배우들의 숙명이죠. 제 배우생명은 물론 대중들이 정해주는 것이지만, 그런 한계를 극복해서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러면 너무 마이너한 감성 같지만 제가 독립영화나 연극을 할 때는 말도 안 되는 소재나 과감한 메시지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상업영화나 드라마에도 물론 메시지나 주제는 있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해야 하는 공통된 소재를 찾다보니 그런 과감함이 조금 아쉬워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주변에 공연하는 친구들의 무대나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을 찾아가요. 그 친구들의 열정을 보면서 저는 반성도 하고 자극도 받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