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기업이 태동 단계에서 투자를 받고 성장하는 과정을 구조화하는 과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창조경제’입니다. 국내 정치의 변동과 관계없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중에서도 중요한 대목은 지속해서 보완하고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금융’처럼 정권이 바뀐다고 정책 자체가 사라져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장범식(59·사진) 금융개혁추진위원장(숭실대 부총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등 국내 정치 상황의 격변에도 실물경제 지원 기능 강화를 중심으로 한 금융개혁 작업은 멈춰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미래 먹거리로서 구체성을 갖고 사업으로 연결될 때까지 다양한 자본조달 방식이 필요하다”며 “엔젤투자, 크라우드펀딩(온라인 소액 지분 투자), 정책자금 지원 등 기업의 창업부터 성장까지 이어지는 자본시장 생태계가 복원돼야 실물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창업기업의 아이디어가 사업화가 되기 전에 상장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국거래소에 더 많은 시장을 구성하고 상장 요건도 낮추고 보완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금융위원회의 민간 정책 자문기구인 금융개혁추진위원회를 이끌면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진웅섭 금융감독원장과의 ‘찰떡 호흡’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금융개혁 과제를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 위원장에게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 방향과 국내외 경제 전망에 대해 물어봤다.
/대담=김현수 증권부 차장 hskim@sed.co.kr
-올해 금융위와 금추위가 추진한 금융개혁 과제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제도의 도입이다.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가 모두 판매하는 ISA는 업권 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국민의 금융 편의성을 증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앞으로 세제혜택 확대와 가입조건 조정 등 일부 보완이 필요하지만 투자자의 금융상품 선택권을 넓혀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제 금융사의 ISA 수익률 공시체계도 자리를 잡은 만큼 실질적인 실력 경쟁을 통해 시장 구조가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자본시장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금융위와 금추위가 낙후된 국내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올해 개혁의 초점을 이쪽에 뒀다. 감히 말하건대 지난 30년 동안 가장 큰 변화가 올해 자본시장에서 나타났다고 본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을 비롯해 펀드상품 혁신, 자산운용업 발전 방안, 신용평가제도 개선 등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앞으로는 개혁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과 관련 규정의 개정 작업을 착실히 진행해야 한다. 그동안 발표만 하고 실질적으로 법규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폐기된 개혁 과제가 많았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금융위와 금추위의 개혁 작업에도 여전히 증권사·자산운용사의 사업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인력구조는 매우 좋다. 그런데 이들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 들어가면 천편일률적으로 영업한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 증권사는 오래된 영업 관행이 고착돼 있다. 국내 대형 5대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3.6%(지난해 말 기준)다. 미국 대형 IB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8% 이상을 유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이제 대형 증권사는 큰물에서 놀고 소형 증권사는 작은 물에서 놀게 해야 한다. 언제까지 모든 증권사가 함께 살고 죽을 수는 없다. 또 뛰어난 인력들이 충분히 뛰어놀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주의 문화부터 확산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슈퍼스타’가 계속 배출되고 성공하는 사례가 나와야 좋은 인력이 계속 들어오고 시장이 산다.
-자본시장에서 세제 이슈도 계속 거론되고 있는데.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장외주식거래시장(K-OTC)과 한국거래소의 스타트업전용거래시장(KSM) 활성화를 위해 주식거래 양도소득세 면제 등의 지원 방안이 이뤄지면 자본시장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에 차별화를 둬야 한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대주주에게는 똑같이 양도소득세(주식 매매차익의 20%)를 매기게 되는데 코스닥 투자자에게 더 세제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투자업계뿐만 아니라 은행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은행 경영이 이제 제대로 변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글로벌 경쟁력 갖추려면 국내 은행도 예대마진으로만 수익 내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을 해줘야 한다. 대형 시중은행을 보면 업무 구조가 정말 비슷하다. 덩치로 보면 국내 금융시장의 맏형 격인데 새롭게 뭘 추진하는 것이 없다. 결국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는데 독일 도이체방크의 사례를 봐야 한다. 비록 파생상품 투자 위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독일 중소·수출 기업이 해외 진출할 때 도이체방크가 동반자가 돼 나가줬다. 금융과 기업이 한몸이 된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결정과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등장으로 내년 금융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이와 관련해 다양한 형태의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 공약과 정책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하는 작업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뤄졌다. 일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이 어느 정도 수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자기자본 확충 관련 건전성 규제와 상업은행·투자은행 업무 분리 등에 있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은 사실 피할 수 없다. 그래도 국내 주식시장이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이를 반영해놓은 상태로 보인다. 내년에는 미국 금리가 2~3번 정도 인상될 것이다. 급격한 자본유출을 방지하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국내 기준금리도 어느 정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탄핵 정국도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인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과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국내 금융시장과 금융사의 기초 체력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특히 증가 추세에 있는 가계부채를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고정금리로 돌리는 등 미리 대응에 나선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금융사에 대한 감독·검사 방식이 다소 느슨해졌다는 우려도 있는데.
△감독·검사 방식의 전환은 50년 동안 가장 획기적인 변화였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변화가 후퇴하지 않도록 스스로 ‘금융옴부즈만기구’를 설치하고 ‘금융규제 운영규정’을 만들었다. 스스로 감시를 받고 있는 체계다. 시장의 자율성을 살리면서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처로 박수 쳐줄 만하다고 평가한다. 금융사와 시장도 금융당국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받아들이고 부응할 필요가 있다.
-내년 금융개혁의 열쇳말(키워드)은 무엇일까.
△‘금융개혁의 일상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금융위가 상설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 내 여러 분과의 자유로운 토의를 거쳐 금융개혁 과제를 금추위에서 의결하도록 조처한 것은 상당한 성과다. 격의 없는 토론을 보장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금융위가 현장점검반을 가동해 지난해부터 약 6,000여건의 건의사항을 받아 약 47%를 수용한 것도 매우 긍정적인 대목이다. 금융개혁이 위에서 찍어 누르는 형태로 이뤄진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의견을 받아 완성된 것이다. 현장에서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된다는 것은 금융소비자로서도 금방 편의를 체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장범식 금융개혁추진위원장 약력
△1957년 전북 남원 △서울대 영어교육학사 △서울대 경영학석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경영학 박사 △1995년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1998년 코스닥위원회 위원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 △2008년 한국증권학회장 △2014년 숭실대 학사부총장 △2016년 금융개혁추진위원장
/정리=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