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료칸(旅館)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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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이색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 장소는 ‘바냐’로 불리는 전통 사우나였고 두 정상은 통역자만 배석시킨 채 허심탄회하게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카자흐스탄으로서는 옛 종주국이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몇몇 정상에게만 행했던 최고의 환대였다.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에서는 사우나가 주요 협상장으로 활용될 정도로 돈독한 신뢰관계와 우정의 표시다. 하긴 발가벗고 앉아 얘기한다니 서로 믿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국제 외교가에서 정상 간의 회담 장소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상대방의 환심을 사고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 목장이나 크로퍼드 목장, 러시아의 개인별장인 다차도 그래서 만들어진 명소다. 온천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료칸(旅館)이 외교활동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내려오는 료칸은 온천과 전통음식·정원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어 하룻밤을 보내면 칙사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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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규슈의 하쿠스이칸에서 개최하면서 잠자리까지 챙겨주는 성의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이 고리야마시의 한 료칸에서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채 현지 식재료로 만든 만찬을 즐겼다. 아베 신조 총리는 5월 주요 7개국(G7) 정상들을 미에현에 있는 료칸인 가시코지마호죠엔으로 안내해 일본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전파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엊그제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의 료칸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쿠릴열도 반환에 목을 매고 있는 아베 총리는 사전에 현지답사까지 다녀올 만큼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사우나를 즐기는 푸틴의 성향까지 고려했을 것이다. 우리도 정상 외교에 내세울 만한 번듯한 전통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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