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닭실마을'



어느 날 신라 탈해왕이 금성 서쪽 숲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서 환한 빛으로 가득해 신하를 보내 살피게 했다. 숲에 갔더니 금으로 만든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궤짝 속에는 준수한 용모의 아이가 있었는데 왕은 하늘에서 보냈다며 이름을 알지(閼智)로 짓고 태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가 바로 경주 김씨의 시조인 알지다. 이 숲은 원래 시림(始林)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발견된 후 계림(鷄林)으로 불리게 됐다.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뜻이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닭의 해다. 닭은 어둠 속에서 새벽을 알리는 빛의 전령이자 상서로운 동물이다. 예로부터 닭의 울음이 좋은 일을 예고하고 빛의 도래를 가져온다며 지명에 반영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전국의 지명을 조사했더니 닭과 관련된 곳만 293개에 달할 정도다. 흔히 금닭이 알을 품는 모양의 지형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고 해서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닭이 많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기 때문에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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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의 닭실마을은 일찍이 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왔다. 마을 뒷산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작은 논과 흐르는 내를 두르고 있는 앞산은 수탉이 날개를 펼쳐 알을 지키는 형상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의 4대 길지(吉地)로 꼽았다고 한다. 전라북도 장수군의 용계마을은 이성계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황산벌 전투에 참여해 대승을 거뒀다는 건국신화를 갖고 있으며 강원도 부론면의 알산골은 200여년 전 어느 풍수가가 지리를 시험하기 위해 달걀을 묻었더니 하룻밤 사이에 닭이 됐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붉은 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길조’로 여겨져 왔다. 새해 정유년에는 어둠이 물러가고 닭의 울음소리처럼 모두가 힘차게 일어서기를 소망해본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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