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idol)’은 본래 ‘우상’이라는 영어 단어로, 국내에서는 10~20대 그룹으로 활동하는 남녀 가수를 의미하고 있다. 아이돌을 비롯해 연예인들은 과거 ‘딴따라’라고 낮춰 불리는 직업군이었지만 이제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한 번은 꿈꿔보는 선망의 직업이 됐다. 인기를 얻기만 하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것 같은 아이돌은 어쨌거나 ‘직업’이다.
브리티시팝·아메리칸팝·J팝에 이어 K팝이라는 고유 장르까지 만들어낸 한류 비즈니스의 선봉인 아이돌을 직업인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봤다. 안정된 미래를 위한 정규직 고용상태를 갈망하는 보통의 평범한 20대나, 활동 기간 동안에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아이돌이나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용 형태는 7년 계약직=올 들어 걸그룹 2NE1·카라·포미닛·레인보우 등이 잇달아 해체 소식을 전했다. 미쓰에이·비스트·시크릿 등은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중은 이들의 해체를 두고 ‘7년 차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며 아쉬워하지만 이들에게 7년이라는 기간은 어쩌면 소속사와 팬들과의 계약 종료를 의미한다.
과거 10년 전쯤 동방신기 일부 멤버들이 전 소속사를 탈퇴하는 과정에서 아이돌의 ‘노예계약’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매니지먼트사와 연예인 사이의 불공정한 계약을 막는다는 취지로 마련된 표준계약에 따르면 연예인의 최장 계약 기간은 7년이며 이후 쌍방 합의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다. 7년 안에 스타로 떠오르든 그렇지 않든 어쨌거나 이들은 ‘7년 계약직’인 셈이다.
정년 보장 및 호봉제 회사가 점점 줄어들고 정규직임에도 정해진 기간마다 근무 조건 등을 연장하거나 퇴사해야 하는 여느 20대와 상황은 비슷하다. 이제 갓 데뷔한 한 아이돌의 멤버 A군은 “연습생 시절부터 열심히 노력했고 좋은 노래도 많고 안무도 멋지게 보여드려서 커다란 사랑을 받고 싶다”며 “3년 내 정산을 받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산’이란 가수로 활동하면서 벌어들인 수익에서 연습생 시절에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회사와의 조건에 따라 수익 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3년 정산’은 실제로 ‘메가 히트’를 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데뷔 2년 만에 정산을 받은 걸그룹 여자친구는 아주 예외에 속한다. 활동 기간 내에 정산이라도 받으면 성공한 축에 속한다.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은 무한 경쟁을 통해 무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며 “반대로 경쟁에서 패하면 기본급조차 없는 극단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라=싱글과 미니·리패키지 등등. 정규 앨범 이외의 앨범 종류다. 예전에는 가수가 1년에 한 장의 앨범을 발매해 몇 달간 활동했지만 음악 시장이 디지털 음원으로 재편되면서 한 해에 여러 장의 앨범을 내고 있다. 이른바 ‘앨범 쪼개기’ 현상인 것. 아이돌의 이런 활동 패턴은 음원 시장의 재편뿐만 아니라 연예계 산업 전반이 변했기 때문이다. 멤버가 다수인 까닭에 나눠야 하는 수익은 점점 줄고 앨범 외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리면서 소위 말해 외부 ‘행사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앨범을 들고 컴백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다.
또 K팝의 인기에 따라 해외 일정까지 많아져 아이돌에게는 거의 휴가가 없다. 데뷔 4년 차인 B군은 “데뷔하고 마음 편하게 쉰 적이 하루도 없는 것 같다”며 “해외여행은 바라지도 않고 가족들과 아무 생각 없이 며칠만이라도 쉬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해외 팬 미팅으로 태국·일본 등을 오갔지만 일정을 소화하고 곧바로 비행기에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며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해외 출장 가서 조금 놀다 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다”고 덧붙였다.
◇투잡은 기본, 배우 겸업은 생명 연장법=이미 ‘연기돌’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됐다. 아이돌 출신으로 연기를 겸업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미쓰에이의 수지, 애프터스쿨의 유이·나나, 아이유, 비투비의 육성재, 비스트의 윤두준, 엠블랙 출신 이준, 제국의아이들의 시완·박형식, 걸스데이의 혜리·민아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돌 출신이 연기자로 전향했거나 가수와 겸업을 하고 있다.
노래와 퍼포먼스를 함께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돌은 배우에 비해 활동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아이돌로 이름을 알린 후에 가수와 배우 ‘투잡’을 뛰고 또 배우로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면 연예인 생명도 연장되기 때문에 이들의 배우 전향은 생존법인 셈이다.
연기돌의 탄생은 이들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20대 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연예시장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한때 드라마 등에서 심각하게 여성이 연상인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연급으로 출연할 만한 여자 배우들은 손예진·김하늘·수애 정도로 이들은 이미 30대다. 또 연예인 지망생 중 대부분은 아이돌을 원하기 때문에 신인 배우를 발탁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고충이다.
올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배우 박보검도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기획사를 찾아다니던 아이돌 지망생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 기획사 쪽에서 가수보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설득해 그는 배우가 됐다. 중견 기획사의 매니저 C실장은 “요즘은 기획사에서 가수로 데뷔해도 연기 수업도 같이 시켜본다”며 “아이돌 활동은 활동 대로 하고 재능에 따라 개인 활동이 보장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우리도 감정이 있다”=연예인들의 이른바 ‘태도 논란’은 항상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불손한 태도를 보인다거나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경우 네티즌들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기 일쑤다. 심지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개인적인 감정마저도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론이 악화하면 이들은 소속사를 통해 공식 사과 입장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성의가 없게 느껴진다 싶으면 더 커다란 공격을 받기도 한다. “사과에 영혼이 없다” “억지로 한 사과다” 등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연예인은 대중 앞에 서는 직업으로 감정 노동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콜센터, 백화점 점원 등 감정 노동자들과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도 필요하다. 대형 기획사의 홍보실장 D씨는 “연예인이 공인의 범주에 속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대중들이 용인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사진제공=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