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것이 있을 곳에서 제 자리를 지키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화가가 그린 것은 새가 아니라, 새가 그려진 새 우리 안의 벽화다. 여기에 진짜 새는 없다. 아래쪽으로 작게 뚫린 사각의 좁은 문이 이게 ‘벽’임을 일깨운다. 동물을 실제 만나는 게 즐겁기만 한 어린아이들과 달리 인위적으로 조성된 동물원의 풍경은 의도치 않게 잡혀 와 갇힌 동물들의 신세만큼이나 삭막하다. 화가 노충현은 ‘동물이 부재한 동물원’, 즉 동물은 없는 대신 인간들이 우리 안에 만들어 놓은 어설픈 장치와 억지스러운 기구들만 남아 있는 동물원을 ‘자리’ 연작으로 그려왔다. 이 그림은 그 중 ‘새들’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동물원의 벽화는 사람을 위한 장치이지 동물들과는 상관없는 희극적 장치”라며 “아무 쓸모없는 장치 속에 희극과 비극이 공존한다”며 부조리한 현실을 비튼다. 동물을 지워내고 본 동물원은 사람이 빠져나간 우리네 삶 터 혹은 일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해 더 씁쓸하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새해이기를 기원한다. 서울 반포대로 KH바텍 사옥 내 페리지갤러리에서 노충현의 개인전이 오는 2월1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