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몸으로 팔레스타인 등 중동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그리스 정교회 소속 힐라리온 카푸치(사진) 전 예루살렘 대주교가 94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시리아 알레포 출신인 카푸치 전 대주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주교로 활동하던 1976년 레바논에서 무기류를 밀수해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에게 전달한 혐의로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돼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12년형을 선고받고 이스라엘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교황청의 개입으로 2년여 만에 풀려났다.
카푸치 전 대주교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에는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부가 억류하고 있던 이탈리아인 68명의 석방을 중재하기 위해 이라크를 전격 방문해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걸프 전쟁이 한창이던 1991년에는 미군의 미사일 폭격으로 민간인 400여명이 숨진 건물을 방문해 “폭격 피해자들은 순교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86세의 고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줄 구호품을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다 이스라엘 당국에 압송된 레바논 선박에 동승해 화제를 모으는 등 평생 투사적인 면모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