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나는 ‘도깨비’가 좋다

송영규 논설위원

TV선 힘 있어도 함부로 안쓰지만

현실의 甲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난중일기에 적힌 수많은 이름은

乙이 세상의 주인공이라 말한다

송영규 위원




옛말에 틀린 것 없다. 남자가 나이 들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던데 꼭 그 모양이다.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주말 TV 드라마를 그것도 넋 놓고 보고 있으니 말이다. 케이블TV에서 방영 중인 ‘도깨비’. 방망이를 든 못생기고 우스꽝스러운 도깨비 대신 30대 매력남 얼굴을 한 불멸의 사내가 ‘고딩’ 소녀와 로맨스를 벌이는 것이나, 저승사자와 삼신할미 등 온갖 신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를 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작가 특유의 위트 넘치는 대사와 ‘달달한’ 표현도 흥미롭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주인공 소녀를 빼곤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비나 벼락을 내림은 물론 죽어야 할 인간을 살려놓거나 전생을 엿보고 망자의 기억을 지우는 능력도 있다. 도깨비의 노복조차 대기업 회장과 오너 3세다.


이토록 강력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이들 중 누구 하나 힘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도깨비는 막강한 재력과 힘을 사람을 살리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 기적에 사용한다. 저승사자는 여자친구 앞에서 거짓말을 못해 차이고 돈이 없어 경찰에게 잡혀가기도 한다. 오너 3세는 신용카드 하나 없이 매장 직원에게 일을 못한다고 구박도 받는다. 신이라기보다, 대기업 후계자라기보다 흔히 주변에서 보는 아저씨·직장인에 가깝다. 겉은 ‘갑’인데 하는 짓은 ‘을’이니 수많은 을들이 동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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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 드라마와 같으면 좋겠지만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막강한 재력과 권력은 언제나 악용되기 일쑤다. 수업을 받지 않아도 부모의 인맥과 권력을 이용해 보란 듯이 우수한 학점을 받고 ‘돈도 실력’이라고 고개를 뻣뻣하게 드는 학생이 있다. 학교를 장사꾼 정도로 취급한 셈이다. 20세에 사법 고시를 패스해 ‘소년 등과’한 전직 청와대 수석은 청문회에 나와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만 거듭한다. 천재가 아니라 금붕어였던 모양이다. 대기업 오너 자제는 비행기에서 술집에서 맘껏 행패를 부리며 자신의 위세를 확인하려 든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것을 보여준 꼴이다.

이러니 세상에 온갖 비정상이 난무할 수밖에. 대통령이 국민은 물론 국무위원과도 벽을 쌓고 강남 아줌마하고만 소통하는 ‘불통의 리더십’, 피해자 할머니들과 단 한마디 상의도 일본으로부터 그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위안부 협상을 10억엔짜리 계약으로 전락시킨 ‘배신의 합의’, 300명의 꽃다운 생명이 왜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아야 하는지 진실을 요구하는 외침을 거부하고 짓밟는 ‘침묵의 외면’, 이런저런 핑계로 아르바이트생들의 돈을 떼먹는 ‘비양심의 갑질’, 정규직 가장을 거리로 내몰면서 그 빈자리를 비정규직 청년으로 채우는 ‘고용의 횡포’….

새해에는 이들도 깨달을까.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을 맡기지 않았다면 대통령은, 정부 관료는, 국회의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아무리 똑똑해도 그 뒤에서 묵묵히 일을 집행하고 물건을 만드는 직원들이 없다면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치 태초부터 홀로 존재했던 존재인양 행동하지만 진짜 세상의 주인공은 지금도 피땀 흘려 일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을’들이라는 것을.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돌격대장 이기남부터 소금 굽던 노예 강막지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름을 빼곡히 채워 놓았다.

지난해 작고한 고(故) 신영복 교수는 목수의 집 그리는 법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지붕부터 그리는 데 반해 목수는 제일 먼저 주춧돌을 그린 후 기둥·들보·서까래를 지나 지붕을 그린다고 한다. 집을 짓는 순서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세상살이도 똑같은 이치다. 사회를, 국가를, 기업을 떠받치는 수많은 을들이 없다면 대통령도 총수도 존재할 수 없다. 드라마에서는 하늘에 살아야 할 도깨비와 신조차 인간 세상에 내려와 부대끼며 산다. 하물며 인간이야. 이제는 허공에 지붕을 그만 짓고 땅으로 내려올 시간이다. 주춧돌이 튼튼한 반듯한 집을 만들기 위해. /skong@sedaily.com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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