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코스닥 상장 하늘에 별따기…VR·AI 등 맞춤형 설비도 부족…4차산업 육성 인프라가 없다

벤처들 증시 상장해 투자 받고 싶어도

심사위원들 융합산업 특성 이해 못해

매출·이익 등 정략적 지표로만 평가

美 테슬라 같은 기업도 입성 어려워

VR산업 성장판도 규제가 가로막아

기술 유출 우려 속 인적자본 해외로

핀테크 플랫폼 서비스 전문 A기업은 미국과 일본 등 해외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규제가 적고 핀테크 산업 지원이 많은 해외시장을 먼저 공략한 것이 성장의 기반이었다. 국내 시장에서도 조금씩 융합산업에 관한 규제가 풀릴 조짐이 보이자 A기업은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우선 국내에서 투자금을 유치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외시장에서 조금씩 수익이 나는 것을 기반으로 사업현황을 소개하며 연구·개발(R&D) 자금을 신청하고 코스닥 시장의 문도 두드렸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핀테크 사업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4차 산업 혁명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해당 산업을 육성할 만한 인프라가 없어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기술을 개발해도 생산 설비를 갖춘 업체를 찾기가 힘든데다 증시에 상장하려고 해도 심사위원들의 신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증시 입성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5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4차 산업’으로 정의되는 핀테크와 인공지능(AI) 등 융합산업은 코스닥 상장이나 벤처캐피털(VC) 투자유치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사물인터넷(IoT)을 연결해 미세먼지와 온도, 습도 등을 측정하는 AI 청소로봇을 제작하는 B기업의 경우 증시 상장을 위해 한국거래소(KRX) 심사위원들에게 로봇 기술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이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B기업은 상장에 실패했고 해외 투자금을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B기업의 대표는 “40명 정도의 심사위원단에서 임의로 뽑힌 10명이 신사업 상장을 심사한다”며 “하지만 하루에 심사해야 하는 기업의 수가 8~10개로 많다 보니 익숙한 분야의 업종이 아니면 제대로 심사가 잘 안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하이테크 업체의 코스닥 시장 진입이 어려운 것은 상장 심사과정에서 미래 성장성과 기술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매출과 이익 등 정량적인 지표만을 따져 안정 궤도에 오른 전통 기업들만 상장되다 보니 미국의 테슬라 같은 기업은 코스닥 시장에는 입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IT 벤처업체 대표는 “기술력이 있어도 매출이 크지 않거나 새로운 업종이면 상장이 미뤄진다”며 “무턱대고 상장을 시켜달라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안정적인 거래처를 두고 있거나 기술력이 있으면 상장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이라고 강조했다.


신산업 맞춤형 생산시설이 없는 것도 문제다. B기업은 현재 중국 드론 업체에 로봇제품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국내에는 해당 규격의 제품 생산을 맡길 곳이 없는 탓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이 우려돼 국내에서 제작하고 싶었으나 최신식 설비를 구축한 곳을 찾지 못했다. B기업 대표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원가가 더 싼 것도 아니고 기술이 유출될 우려도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며 “4차 산업을 키우려면 제조 설비를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가상현실(VR) 기반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도 대만에서 소프트웨어를 생산해 들여오고 있다. 카이스트 출신인 해당 스타트업 대표는 직접 기술을 설계했지만 제조할 장소와 인력이 없다고 했다. 규제로 인해 VR 산업이 크지 못하는 사이에 기술공학을 전공한 인재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으로 빠져나가 인적 자본도 부족해진 셈이다.

정부는 상장공모제도를 개편해 4차 산업 관련 특허 심사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방침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정책이 과연 제대로 시행될 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4차 산업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제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라며 “규제를 풀어 상장이나 벤처투자 유치의 벽을 낮추고 융합산업의 핵심 시설인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키워야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백주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