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최근 방중한 한국 야당의원들을 만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가 늦춰지면 중국도 국면 전환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뜻밖이고, 노골적인 발언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류 스타들의 활동을 막는 숱한 한한령(限韓令)에도, 한국 국민에 대한 비자 규제와 산업 규제에도 설마설마했는데 역시 사드 보복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중국은 지난해 7월 한반도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한국을 집요하게 괴롭혀왔다. 8월에는 중국 복수비자 편법발급 관행을 돌연 차단하더니 중국인 관광객(유커)의 한국 여행 20% 감축(10월),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안 강화(11월), 한국행 전세기운항 불허(12월) 등 납득못할 조치를 쏟아냈다. 그 사이 K팝 스타들은 중국 무대에 설 기회가 사라졌고 한류스타들의 광고도 뚝 끊겼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주도면밀했다. “미국의 사드 한국 배치를 반대한다”고 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난해 9월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발언은 하나의 지침이었다. 그리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드로 인한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이 가장 먼저 공격목표가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는 사드 보복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은 세 가지 이유로 부당하다.
첫째, 대국답지 못한 속 좁은 행위다. 사실 중국의 사드 반발은 “미국의 사드 한국 배치를 반대한다”는 시진핑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이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사드에 대한 보복도 반대도 모두 미국에 해야지, 왜 한국을 괴롭히나.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전형적인 여유토강(茹柔吐剛)의 행태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답게 사드 문제에서도 북핵의 피해자인 한국을 못살게 굴 것이 아니라 북한의 말썽을 잠재우는 동시에 강대국 미국에 당당하게 맞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탄핵정국으로 곤란에 처한 한국을 돕지는 못할망정 외교역량이 허약해진 틈을 노려 보복의 강도를 더욱 높이려 한다. 대국답지 않은 졸렬한 모습이다.
둘째, 명분이 없다. 사드 보복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규정한 ‘상호내정불간섭’ 외교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의 주권적 방어조치의 하나다. 그리고 한국이 언제 중국의 핵무기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트집을 잡거나 보복을 가한 적이 있나. 같은 이치로 중국도 한국의 주권적 결정에 간섭하면 안 된다. 그보다 중국은 이 시점에서 지난해 대만 총통 선거 때의 ‘쯔위 사태’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것이 못마땅하다고 괴롭히다 외려 반중정서를 자극해 대만 독립파 차이잉원의 압도적 승리를 초래했음을 벌써 잊었는가. 사드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한국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반중정서가 높아지고 사드 배치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사드 보복으로 중국이 얻을 실익도 없다. 주변국을 둘러보라. 일본은 중국에 우호적인 시선을 가진 국민이 5%에 불과할 정도로 반중정서가 절대적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인도와 베트남의 적대감정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사드에 대해 중국과 대체로 공감한다는 러시아조차 극동에서의 중국 굴기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는 중국에 반감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곧 출범해 전방위적인 대 중국 공세가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정황으로 봐도 지금 중국은 실익도 없는 사드 보복으로 한국을 적으로 만들 여유가 없다. 특히 지금은 한국과 힘을 합쳐 미국의 경제공세부터 막아내야 할 다급한 시점임을 중국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부산 소녀상’에서 보듯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몰염치가 선을 넘어서고 있어 한중 공조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한중관계를 서둘러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은 어리석은 사드 보복일랑 당장 멈추고 한중 양국의 미래를 위한 협력의 길로 돌아오기 바란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