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현비, 재미의 시대] 사람들은 재미경험을 그리워한다.

[이현비, 재미의 시대] 사람들은 재미경험을 그리워한다.

이현비(이창후)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삐삐가 처음 나왔을 때 이야기다. 어떤 식당으로 전화가 와서는 삐삐치신 분을 찾았다. 하지만 삐삐가 뭔지 모르는 식당주인이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빼빼하신 분 전화받으세요!” 전화한 사람은 식당 주인이 ‘삐삐’가 뭔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호출하신 분을 바꿔달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자 식당 주인이 다시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홀쭉하신 분 전화 받으세요!”

아마 40대 이상 분들이 이 유머를 이해하고 웃을 것이다. 그건 유머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삐삐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삐삐 음성 사서함에 메모를 남기고, 삐삐에 남기는 숫자 몇 개로 생각을 전달하던 경험 말이다. 휴대전화가 일상화된 오늘에 돌아봐도 그것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재미 경험의 마지막 단계는 동경, 즉 그리움이다.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우습거나 행복한 것뿐만 아니라 무섭거나 슬픈 것들도 그리워한다. 여름마다 TV에서 납량 특집이 편성되고 영화관에서는 공포 영화가 개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미있는 공포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공포 경험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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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의 심리는 복고풍 시장의 근간이다. 나는 2011년에 불었던 가요계와 한국 영화음악에서의 복고 바람을 기억한다. 그 때 가요계에서는 70년대에서 90년대 인기곡을 자주 과제곡으로 택했고 영화음악에도 80~90년대 히트곡들이 대거 활용되면서 스크린은 ‘7080콘서트’나 ‘3040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영화도 다르지 않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80년대의 인기곡인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과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 한 번’이 등장하고, <써니>에서는 나미의 ‘빙글빙글’과 ‘보이네’, 조덕배의 ‘꿈에’가 등장했다.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아닌 <수상한 고객들>에서도 흘러간 히트곡이 영화의 중심에 놓였다. 이렇게 사람들은 지난 경험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여기엔 거의 예외가 없다.

나는 연어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 자기가 태어난 강의 상류로 올라가는 본능이 우리의 과거에 대한 동경,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거에 대한 그리움의 정체는, 자신이 보다 더 젊었을 때에 체험한 모든 것으로의 돌아가고픔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모두 ‘아름답고 멋진 추억’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일제 강점기 때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들이나 6.25 직후 보리 고개를 겪으며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들도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체험했던 것으로 돌아가고픔이다.

그러므로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멋진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재미 경험에서의 동경은 어린 시절의 고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리움이 아니라 사가와 상관없이 즐거운 쾌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리움이다. 잘 만들어진 재미 콘텐츠만이 이런 동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복고 바람을 일으키는 영화나 가요들은 지난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명작들이다. 그런 명작들의 DVD나 캐릭터 상품만이 시장을 지배한다. 이에 반해 유행을 뒤쫓아서 만들어진 싸구려 콘텐츠는 일회성으로 끝난다. 그리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국 지속적인 매출을 창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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