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위기의 삼성] "제2 하만찾기 M&A·투자 급한데"...제동 걸린 '뉴삼성 플랜'

<1>총수 소환, 컨트롤타워 부재 사태 오나

경영공백 현실화 땐 반도체·스마트폰 추가투자 물거품

AI·VR·자율주행차 등 신성장분야 M&A도 불가능

"골든타임 놓치면 한순간에 시장서 낙오" 발만 동동



지난해 11월29일 아침 삼성전자는 이사회가 끝난 뒤 중장기 비전을 담은 야심 찬 경영전략을 발표했다. 65조~70조원의 순현금을 바탕으로 기업 인수합병(M&A)과 시설투자에 적극 나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도체,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부품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마트폰과 TV·가전제품에도 혁신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다짐이었다. 삼성전자의 ‘황금 포트폴리오’인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생활가전 등을 겨냥해 미국은 물론 중국·대만·일본 등 경쟁 기업들이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어 성장엔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묻어 있었다. 시장의 기대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소환되고 최악의 경우 구속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어 이 같은 경영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대형 M&A와 시설투자에 대해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총수가 특검에 소환됨에 따라 경영공백이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룹의 핵심 전략을 조율하는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의 최고위층들까지 줄줄이 사법 처리 선상에 오를 경우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붕괴되는 수준으로 몰릴 수 있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12일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제2의 하만’을 찾아 M&A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이 이어진다면 미래전략 수립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된다”며 “인공지능(AI)·가상현실·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도 브레이크가 걸린다”고 말했다.

◇캐시카우 반도체·스마트폰, 안심할 수 없는데…=삼성전자의 캐시카우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이다. 지난해 4·4분기 삼성전자는 9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는데 이중 반도체가 5조원가량, 스마트폰이 2조원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한국 수출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순간이라도 투자와 혁신을 멈추면 세계시장에서 낙오될 수 있다. 특히 ‘타이밍 산업’인 반도체는 2~3개월만 제때 투자를 하지 못하면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특검 소환으로 컨트롤타워 기능이 약화된 삼성그룹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의 경우 지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기록했지만 올해에는 전년 대비 3.5% 증가에 그치고 내년에는 역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2위 기업의 경우 삼성과의 기술격차가 2년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1년 6개월 정도로 바짝 좁혀졌다”며 “삼성 추격에 박차를 가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시스템반도체 강자인 애플이 D램시장에 다시 진출하면서 삼성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규모 펀드 조성, 시설투자, 해외기업 인수에 나서면서 ‘삼성 타도’를 외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9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소형 OLED 패널에서도 LG디스플레이가 생산규모를 늘리고 있고 일본·대만·중국 기업들이 속속 시장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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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한마디로 위기상태이고 비상상황”이라며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에 대한 시설투자와 M&A를 통해 후발업체를 따돌려야 하는데 이 부회장 소환과 후속조치에 따른 경영공백으로 의사결정이 늦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경영공백으로 대형 M&A·시설투자 때 놓치나=이 부회장의 경영공백이 현실로 나타나면 차세대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공격적인 M&A와 시설투자에도 급제동이 걸리게 된다.

실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경영일선에 나선 이 부회장은 굵직한 투자 결정을 진두지휘하며 공격경영을 이끌었다. 시스템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10억달러(약 1조1,42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M&A 사상 최대규모인 80억달러를 들여 세계적인 전장기업 하만을 전격 사들였다. 이 부회장의 통 큰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만 비브랩스(인공지능 플랫폼)·데이코(럭셔리 가전 브랜드)·애드기어(디지털 광고)·조이언트(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연이어 사들이며 핵심 경쟁력을 키웠다. 하지만 특검 소환 등으로 이 같은 광폭 행보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당장 미국 정부가 중국산 삼성전자 세탁기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서도 대응전략을 찾아야 한다. 미국 본토에 생활가전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하는데 최종 결정은 결국 이 부회장이 내려야 한다. 이처럼 이 부회장이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오는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특성상 전문경영인은 수조원에 달하는 시설투자와 M&A에 나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국 오너가 제때에 전략적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며 “이 부회장의 공백이 길어진다면 삼성의 장기 투자전략에도 차질이 생기고 글로벌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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